거실에 누워

슬픔방에 온돌 깔기

by 이불

아이를 키우면서였을까. 언제가부터 나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분명히 말하면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소리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어폰을 끼면 다른 세상으로 끌려들어 가 지금 내가 선 세상과의 길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젯밤 신랑이 동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가수 성시경이 일본방송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그중 도입부부터 멈춰서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히로인. 유려한 성시경 가수의 일본어 발음이 물 흐르듯 흐르며 멜로디가 가슴을 도근도근 두드리는 것 같았다. 일본 방송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의 사연과 해낸 성공의 이야기는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어 이 노래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시원하고 눈물 나게 웃고 난 후였다. 내가 생각해도 웃긴 내 모습을 누군가 발견해 주고, 가볍게 웃을 수 있음을 감사한 후였다. 그냥 별로인 그런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던 차였다. 갑자기 이 노래가 내 삶의 배경음악처럼 들려왔다.

내 삶을 슬라이드 영사기로 한 장씩 비춰가던 도중 페이지를 넘겼는데, 그 시작점부터 음악이 흘러나온 것이다. 처음엔 좀 멀리서 들려왔다. 집안일을 하던 도중이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짧은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가슴에 뚫린 구멍으로 바람은 새고 있었지만 가슴 벅차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겨울을 날 수 있겠다 생각하던 중이었다. 한 걸음 나아가지는 못하고 이불속으로 숨어 들어갈 생각뿐이지만, 겨울이 좋다고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음악 때문에 내 마음이 설렁설렁 문이 열리는 건지, 내 마음이 음악을 붙잡고서 삶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지 모를 일이었다. 무엇이 먼저인지 모를 만큼 강하게, 삶을 살고 싶은 진동이 느껴졌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 노래가 전부가 되었을 때, 주변이 흐릿해지고 오롯이 지구가 나만을 끌어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늘의 숙제는 동화책 '붉은 실'을 읽는 거였다. 세 사람이 둥그런 탁자에 모여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빨간 체크무늬와 붉은 실이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다. 페이지마다 줄줄이 끌어올려지는 실을 따라가다 은별이를 만났다.

"상자 안에는 뜨다 만 작은 조끼와 붉은색 실타래 그리고 바늘들이 들어있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거라고 했다.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나왔다며 이모는 마치 엄마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데 자꾸만 아기 초음파 사진과 구겨진 상자에 끼여 불편해진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지금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나 할까. 선이 딱 그어진 느낌이다."

오늘 한정 깔린 배경음악 때문인지, 은별이의 이야기는 흐르지 않고, 훅 들어왔다. 나를 낳은 엄마를 생각하게 되는 과거의 시간이 붙들었을 때 느껴졌을 그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 아이가 느낄 그 슬픔 앞에 엄마인 내가 바짝 서니 살짝 떨렸다. 그 사이를 비집고 삽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은별이의 뒷모습이었다.

지하철 전광판의 아이를, 엄마를 한참을 바라보고 섰을 은별이. 붉은 실로 연결된 그녀들. 세차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노래 때문이다. 노래 때문이다. 배경음악 때문이다. 이래서 이어폰을 꽂는 게 어려웠나. 눈물을 붙들어야 할 이유가 넘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세계의 몰입하는 일보다 현실에 발붙이는 일이 더 중요했다. 아이들의 소리를 듣는 게, 잘 듣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사실 내가 못할까 봐, 잘 못할까 불안하고 힘겨워했던 것 같다. 추운 겨울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마법처럼 마음이 후끈하게 데워졌다. 글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며 내 볼품없는 마음의 세계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다. 배경음악이 걸린 슬라이드를 처량하게 혼자 보고 울며, 이건 모두 배경음악 때문이라고 탓하는 그런 나에게, 계절을 선물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겨울이다. 문학 작품 앞에 바짝 기대어 주변이 흐릿해지는 순간이 왔다. 은별이에게, 강우의 이야기에 몸이 바짝 떨렸던 나를. 슬픔방에 구부정하게 목부터 디밀어 보는 나를 본다. 성시경 노래를 듣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다. 일본 사람들이 던지는 키레-, 어이어이. 모두 음악으로 들려온다. 이번 겨울은 글도 쓰고, 책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슬픔방에 온돌을 깔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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