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외국인 남편과 살다보면 국뽕이 더 크게 차오르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도쿄 올림픽 때 우리나라 선수들이 양궁 금메달 4개를 딴 순간이나 우리 시아버지께서 새로 나온 현대차와 삼성폰을 구입하는 등 몇몇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남편은 산이나 바다처럼 자연을 좋아하는데, 헝가리에는 강과 호수는 있지만 바다가 없다. 그래서인지 한국은 이런 멋진 자연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나고 자랐기에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남편 덕분에 한국인이라는 것에 긍지를 느낄 때가 많다.
최근에 남편과 언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았고 좋아했다. 그래서 호주로 유학을 갔을 초반에 나는 저절로 영어의 신이 될 줄 알았다. 물론 결과는 당연히 아니었다. 더군다나 자아가 확실히 자리잡은 20살이 넘어서 갔고, 호주 대학 생활은 미드 프렌즈처럼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생활일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거기서 나는 이방인이었기에 더 노력해야 했고, 그들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철판을 깔고 오바하고 먼저 다가 갔어야 했는데 하루이틀 넘어 기숙사 방에 박혀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영어가 조금 더 늘었다..;;ㅎㅎ)
물론 좋은 친구들도 있었고, 내게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거나 상처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냥 나 혼자 주눅이 들고 기숙사를 드나들 때 혹시라도 누가 마주칠까봐 재빠르게 지나가고, 정말 나 혼자 자존감이 바닥을 치며 살았다. 30이 넘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일도 아닌데 말이다. 누가 마주치면 "Hey, how is it going?" 이런 말을 하며 하루 일과를 묻고 설령 누가 무례하거나 기분 나쁘게 한다면 "You got a problem?" 하면서 동양인의 매운맛을 보여주면 되는것이었는데!
그런데 더 흥미롭고 슬픈 것은, 같은 한국인들로 인해 더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유학을 갔을 당시 그 학교에 유독 한국인이 많았다. 한국인과 호주인이 함께 있을 때면 당연히 영어를 사용했는데, 신기한 점은 영어가 모국어인 호주인들은 내가 문법이나 발음이 틀리던 말던 관심이 없고 대화를 하는데, 같은 한국인이 내가 문법을 틀리지 않고 잘 말하나 혹은 발음이 어떤지 귀를 쫑긋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실수라도 하면 "Oh, your English is ..." 이런식으로 농담 반, 진심 반이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어렸고,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 여유가 없던 나는 상처를 크게 받았다.
반면 한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남편은 식당에서 한국말로 "사장님, OO 한 그릇 주세요!" 라고 주문하면 식당 사장님이 한국말 잘한다고 칭찬을 종종 받는다. 또한 업무상 처음보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남편이 딱 봐도 외국인으로 한국말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예 없어서 그런지 남편이 한국말을 시작하면 놀라워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 왈 "내가 한국말을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닌데 한국인들은 칭찬도 잘해주고 친절해." 이 말에 나는 절대 반박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이 한국에 대해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니 감사하다.
하지만 영어를 쓰는 같은 한국인에게도 좀 더 친절해주길... 그렇다고 혹여나 누가 내가 영어 못한다고 무시한다고 10년 전 나처럼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 그리고 그럴때는 속으로 "저럴 수도 있겠다. 병신" (현우진 스타강사의 내 기준 명언, 수험생활 끝난지 오래 되었지만 이 분이 강의 중 하는 말을 자주 보는데 의도치않게 위로를 받을 때가 많다.) 이러고 넘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