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힘듦’ 대신 ‘빡셈’이라는 비속어를 사용했습니다.)
‘숙제강박’이라는 아이디에서도 알 수 있듯, 나는 빡세게 사는 것에 일종의 강박이 있다. 하지만 그건 인생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런 편이었다는 뜻이고, 사실 한 달, 한 주, 하루, 한 시간 단위로 쪼개서 살펴보면 일관되게 빡센 삶을 살아온 건 또 아니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안 하고 널브러져 시간만 축낼 때도 있고, 또 어떤 성과를 내고 나선 그에 따른 보상심리로 인해 흥청망청 취한 채로 한 달을 보낼 때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던 순간들은 ‘빡셈’의 끝까지 가거나 극도의 ‘안주’를 하는 순간이 아니다. 오히려 ‘빡셈’에서 ‘안주’로 또는 ‘안주’에서 ‘빡셈’으로 태세를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은 뒤 그 성과를 자축하며 안주하는 순간, 지겹도록 쉬어서 몸과 마음이 충분히 건강해졌다고 생각할 때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 설렘을 느끼는 순간들이었다.
즉 내 인생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안주하는 태도와 노력하는 태도 사이의 줄타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됐어. 좀 쉬어가자.”는 생각과 “지금 쉬어서 뭘 이루겠어. 젊어서 빡세게 살자.”는 생각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전환이 나를 나로 살게 한다.
그래서 ‘빡셈’과 ‘안주’ 중 어떤 것이 꼭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인생이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다 싶으면 반대로 돌아가는 용수철 같은 성질을 갖고 있으며, 또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뿐이다. 만약 정도를 넘어 치우치게 된다면 늘어나버린 용수철이 다시 제자리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둘 사이를 더 자주, 더 기쁘게 오가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젊은 세대를 생각할 때면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누군가는 안주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앞만 보고 달려 나가고, 누군가는 노력에 뒤따르는 보람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 대충 때우면서 살아간다. 노력을 하면서도 휴식을 갈망하지만 쉬면서도 죄책감에 사로잡혀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안주만 하던 사람은 열심히 살아보고 싶음에도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인생은 흑과 백 중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님에도, 태세를 바꾸는 것을 자연스러워하지 못한다.
만약 누군가가 스스로 독한 면이 없다고, 혹은 맘 놓고 쉬지 못한다고 자책하고 있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바로 그런 흔들림과 고민이 모여 인생을 이루는 것이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이니까. 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균형 있게 사는 면에서는 남들보다 성공적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인생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수 만 가지의 다른 모습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