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술자리가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지만 가끔 회사에서 거리두기를 어기지 않는 선의 소규모 회식을 진행할 때가 있다. 금전적인 제한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직원들은 의례 소고기나 생선회를 고르곤 한다. 그런 메뉴를 먹는 자리는 김치찌개를 놓고 소주 한 잔 하는 자리보다 훨씬 분위기도 좋다. 이 맛에 회사 다니는 거 아니겠냐며 으쌰으쌰가 절로 된다. 술도 평소보다 많이 마시고, 회사나 동료에 대한 마음속 응어리도 사르르 녹아내린다.
하지만 소고기나 회가 꼭 맛있어서는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메뉴를 먹는 기회가 드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소화를 시키지 못해 먹고 나서 고역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나는 술자리 하면 제일 먼저 소고기와 생선회를 떠올린다. 하산의 고통을 잊고 또다시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처럼, 나는 다음날의 불편한 속을 예상하면서도 일단 시키고, 먹고 본다.
내가 어렸을 적엔 소고기나 생선회를 먹는 일이 연례행사였다. 오죽하면 치킨이나 삼겹살만 먹어도 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2천 년 대 초반만 해도 잘 유통되지 않던 돼지 잡고기를 1인분에 2900원쯤에 파는 식당들도 유행했었다. 그런 것들도 부족한 줄 모르고 기쁘게 입 안에 욱여넣었다. 그러다 먼저 취업한 선배가 생선회를 사거나 집안에 명절 선물로 소고기가 들어오는 날엔 안주 맛을 잊지 않기 위해 술도 적당히 참았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소고기나 생선회 맛은 예전 같지 않다. 맛있다는 제철 회를 찾아먹고, 회 숙성이 기가 막히다는 집에 가봐도, 한우가 유명하다는 동네에서 갓 잡은 한우를 먹어도 감동적인 맛까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회식만 되면 소고기나 회를 찾는 건 그저 “나 이만큼 성공했다”, “삼겹살에 벌벌 떨던 예전의 내가 아니다”, “사는 건 팍팍하지만 그래도 나 잘 버티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싶은 건 아닐까 한다. 회식에서 느끼고 싶은 건 맛보다 안도감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