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여행이다, 라는 말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보통 아무 감동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나는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삶을 마감하지 않는 이상, 보통의 경우에는 인생이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게 주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히나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 것이 마뜩지 않게 느껴지곤 했다. 아무리 긴 여행을 상정한다고 해도 여행으로 치부하기엔 인생이 너무 길고, 그런 아득한 인생을 여행처럼 쿨하게 살아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중, 후반을 넘은 경우가 많다는 것도 내 불신에 한몫했다. 보통 나이 지긋한 작가들이나 종교인들이 마지막을 앞두고 죽음에 어느 정도 초연해졌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세뇌시키기 위해 그런 말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떤 종류의 말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절대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법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진심으로 깨달음에 이르렀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단지 너무 흔한 비유라서다.
그런데 내 나이가 들어서일까.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서 나도 모르게 인생과 여행을 연관 지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개인의 인생을 여행처럼 쿨하고 자유롭게 살아보자는 마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인생 또는 지구별의 여행 동지라는 마음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조차 내 여행의 동반자일 수도 있다는 일종의 인류애를 느낀 것인데,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도,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아저씨도, 길을 걷다 마주치는 아이들도 모두 여행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니 전에 없던 관심이 갔다. 낯선 여행지에서 막연한 친절과 도움을 기대하는 것처럼 나와 그들도 의도치 않게 내던져진 인생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 비록 일면식도 없는 남남이지만 서로를 긍휼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했다. 나에게 큰 손해만 아니라면 잠깐의 친절이 이곳을 더 살기 좋은 여행지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은가? 이 지구와 인생이라는 것이 좋은 여행지로 소문이 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그동안 책이나 영화를 보며 수많은 감정을 느꼈지만, 인류에 대한 사랑을 느껴본 적은 이상하게도 처음이었다. 개인에 대한 사랑이 아닌 집단에 대한 사랑, 그것도 나를 포함한 전체에 대한 사랑은 나 하나에 대한 사랑이나 자존감을 느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거대하게 다가왔다. 역사 속 모든 잠언들이 한꺼번에 증명되는 단 하나의 현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