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것을 싣으라는 모호한 이름 뜻
그러할 연(然), 싣을 재(載) 나의 이름 뜻이다. 그러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진 것, 길한 것을 싣으라는 뜻을 가진 사촌형들의 이름 뜻처럼 명확하지 않은, '그러한 것'은 무엇일까? 모호한 이름 뜻은 내게 경계 없고 사방으로 활짝 열린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으라는 것처럼 이해됐다.
스스로 마땅히 그러한 자연(自然)의 이치처럼, 내 생에서 마땅히 그러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중학교 시절 본관과 시조에 대해 탐구해오라는 숙제를 받은 이후부터 인생의 전환점에서 종종 생각해 왔다.
어린 시절 내 주변에는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친구들이 많았다. 자동차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차덕, 밤하늘의 별을 보며 천문학자의 꿈을 꾸며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이면 반 친구들을 대상으로 천문관찰 파티원을 모집하는 친구, 프라모델에 푹 빠져 로봇 모형을 끈질기게 모으는 친구 등 소위 덕질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고, 탐구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세월이 흐른 후 좋아하는 것들이 뚜렷한 그 친구들은 외제차 딜러로, 자동차 제조기업의 엔지니어로, 기상청의 연구원이 되었다. 나는 그 친구들의 명확하고 뚜렷한 꿈과 목표가 늘 부러웠다.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내 마음속 한편에 늘 있었다.
나는 나의 생각을 일기장에 기록하며 언젠가 내가 기록하거나 창작한 것들로 세상을 이롭게 하거나 감동을 전하는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음악일 수도, 그림일 수도, 연극이나 공연 같은 무형의 시간예술일 수도 있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것이 가진 에너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우주가 다차원 구조로 설계된 공간이라는 이론을 접하고 나서는 종교와 천문, 과학에 대한 책과 잡지들을 읽으며 전우주적 관점에서는 티끌보다도 못한 작은 존재인 인간의 삶이 이토록 유한하고 보잘것없는 데에도 불구하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삶의 과정들에 대한 염세적 회의로 가득 찬 시절을 보낸 적도 있다.
그 시절(주로 군입대 전 이십 대 초반부)엔 만나는 친구, 선배, 후배 심지어 교수님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늘 이 질문과 함께였다. '꿈이 뭐예요?' 내 삶이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방향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만난 이들에게 어김없이 내뱉던 질문은 '꿈이 뭐예요?' 뿐만 아니라 '삶의 낙이 뭐예요?'도 있다. 그 질문은 종종 부모님에게도 전해졌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고, 진지하게 자신의 꿈과 낙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이상적이고 감상적인 그 대화를 나누며 1시간 넘게 통화하는 일도 많았다.
내가 갖고 싶은 직업보다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어떤 방향인지,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 것인지, 그게 우주의 먼지 같은 나란 존재가 전우주적 관점에서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이 많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부모님 집을 떠나 살아온 지난 시간들은 '그러한 것'들을 찾아 이곳저곳에 흘러들며 탐구해 온 여정이다. 모호하지만 내 길을 찾는 재미가 있었던 지난 여정.
내가 찾은 그러한 것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지만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연결하는 것
재미있는 것
의미 있는 것
이것들이 내가 찾은 연재의 그러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