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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Jun 28. 2021

코로나와 난임치료

코로나 덕에 임신에 성공하고 경력단절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늦은 결혼에다 다낭성난소증후군을 겪고 있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아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매달 생성되는 8~10개의 난포 중 성숙한 난포 하나가 배란되어야 임신을 하거나 생리를 할 수 있는데 t의 경우는 난포가 성숙되지 못하고 모두 퇴화하여 배란이 없거나 불안정한 생리를 했다. 성인이 된 이후 지금까지 피임약을 먹으면서 정상생리를 유지해 왔지만 임신을 기다리는 입장에서 조금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했다. 상담 끝에 산부인과에서 배란유도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고 노력했지만 2차례 모두 실패했다. 부부는 본격적으로 난임 병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관건은 직장생활과 난임치료가 병행될 수 있는가였다. 모자보건법 11조에 따라 난임치료 시술비지원은 기준 중위소득 180% 이하에게 지급되므로 맞벌이 부부에게 적용되기는 쉽지 않았다. 난임 휴가는 법적으로 연간 3일 보장받는데 1일은 유급이고 2일은 무급공가로 처리된다고 했다. 시험관시술 기준으로 한번 진행할 때 마다 5~6회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난자채취나 시술당일에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일 년에 3일은 부족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했다. 무엇보다 난임휴가와 대체휴가, 반차 등을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난임치료를 받는 다는 것을 회사에 공식적으로 알려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불편한 사항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기를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우선 부딪혀보는 수 밖에.     


“ 보통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 난임시술을 결정한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기 때문이지요. 때마침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와 출근을 병행하게 되어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      


난임병원의 진료는 7시 30분부터 시작했다. 6시 40분에 병원에 도착해 진료표를 받아놓고 대기해만 첫 번째 내지 두 번째로 진료를 보고 출근시간에 맞춰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난임병원의 시작 시간이 다른 병원과 다른 이유일 것이다. 수시로 병원을 가야하는데 그때마다 말을 하기에 난감하고 회사에 폐를 끼치기 싫은 사람들의 고충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t는 나팔관 조영술로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길이 막히지는 않았는지 검사하고 남편은 정자 검사를 했다. 기존에 보험적용이 되던 배란유도제가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판단하고 비보험의 값이 비싼 다른 약을 처방받았다. 추가로 난포유도제를 주사하기로 했다. 호르몬 주사라 시간에 맞춰 주사해야 해서 자가주사가 필요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알람설정을 해 두었건만 업무 중에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알람이 울리면 화장실에 가서 뱃살을 움켜쥐고 90도로 각도를 유지해 그 자리에 주사 바늘을 꽂아야 한다. 이 주사의 후유증은 상당한 복부통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 날로부터 2일 후에 시술을 하게 되는데 시술을 받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함으로 이 날은 피치 못하게 반차를 써야 했다. 예상은 했지만 아랫배와 꼬리뼈까지 이어지는 통증으로 집에서도 절대안정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임신테스트기를 체크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1차 인공수정 실패.     


2차, 3차의 실패를 겪는 동안 배란유도제 부작용, 난포주사 부작용, 질정 부작용을 골고루 겪었다. 그 과정에 두통과 복부통증에 미식거리는 증상과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항생제와 스트레스로 위염과 장염까지 겪었다. 또 몸이 종일 무겁고 피곤한 상태가 이어졌지만 그런 것쯤이야 극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몸살을 앓는 것은 가장 중요한 난소였다. 난소가 부어 제 기능을 못해 한 두 달 쉬어가기도 하고 없던 용종이 생겨 용종을 제거하고 지켜보느라고 쉬어가기도 했다. 이 때는 자연임신조차 시도할 수 없으니 시간이 너무 아깝고 모든 것이 야속하고 답답한 심정 뿐이었다. 인공수정 3회를 겪는 동안 일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시험관시술이었다.      


인공수정이 체내 수정이라면 시험관시술은 체외수정을 한 후 배양해서 이식하는 방식이다.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이 추가 되는데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건강한 난자를 위해 고가의 영양제를 처방받기도 했다. 면역수치가 높으면 이식된 수정란을 몸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기에 면역수치를 낮추는 약을 먹었다. 시험관 시술은 인공수정에 비해 몇배가 힘든 일이었다. 인터넷 까페에서 인공수정 3회 실패 후 시험관시술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시간낭비 하지 말고 바로 시험관 시술을 권하는 주장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몸이 몇 배는 힘들지만 한 번에 확률이 높은 시험관 시술을 바로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몸이 덜 힘들고 자연임신에 가까운 인공수정에서 성공하는 사례도 많으니 인공수정을 먼저 노력해보는 입장도 이해가 간다. k의 경우가 그랬으니까.     


드디어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을 보았다. 그러나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다. 매일 아침 임신테스트기를 들여다보다가 날이 갈수록 두 줄이 희미해지면서 낙담하게 된 경우를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임신이 되려다 실패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른 기대는 삼가도록 노력하면서 매일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병원에서 임신 확인을 받았고 후에 아기 심장소리를 확인하고서야 진짜 임신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난임치료를 시작한지 1년 5개월 만에 임신에 성공하게 되었다. 주어진 난임 휴가 3일에 대체 휴가를 쓰고 자주 반차를 쓰기는 했지만 무사히 과정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 때문이었다.      


“ 2019년부터 난임지원에 있어 연령제한이 폐지되고 일부 대기업에서는 자체적으로 난임휴가를 늘리기도 하면서 여건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지금의 정책은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남성의 난임휴가, 탄력근무제화대, 기업과 사회가 난임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겠고요. 세계가 코로나로 혼란과 공포에 쌓여있었던 이 때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부부는 코로나 덕에 임신에 성공하고 경력단절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재택근무기간이 있었기에 병원을 다니기가 수월했고 약물 부작용이나 시술 후 고통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다들 이제 시작이라고 하더군요. 출산 후에도 경력단절의 기회는 얼마든지 찾아 온다고요. 최선을 다해서 지켜내 보겠습니다. 난임도 극복했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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