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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Mar 23. 2020

누군가의 울타리는 누군가에겐 벽이었다

"이젠 벽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실은 저것도 문이란 말이야!"

“우리의 보금자리인 이 열차 안에서 살인적인 추위로부터 모두를 지켜주는 건 하나야. 질서. 그 덕에 얼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거라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는 모든 것이 얼어붙은 지구와 그 위로 달리는 열차가 등장한다. 추위를 피해 어떻게든 열차에 탑승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꼬리칸’이라 불리는 짐칸에 격리된다. 그들이 군인들의 통제를 받는 동안, 엔진 칸에 가까운 승객들은 더 많은 권력과 편의를 제공받는다.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꼬리칸 주민들도 계속되는 차별에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행동대장 커티스는 4년 전 진압된 반란을 분석하며 열차의 총알은 멸종되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군인의 총에서 빈 소리가 나는 순간, 마침내 새로운 반란이 시작된다. 꼬리칸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앞을 향해 나아간다. 축적된 분노와 다른 삶에 대한 기대감을 가슴에 품고서.


   *


   돌이켜보면 주말마다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던 스물한 살의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T는 학교 안팎으로 여러 활동을 하며 좋은 자료나 행사가 있으면 나에게 소개시켜주었는데, 덕분에 나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서울에 올라갔다. 그러면 이왕 멀리 왔으니 미술관에서 전시도 보고, 부산에서는 상영하지 않는 영화도 보고, 홍대에서 길거리 공연도 보고 하면서 주말 내내 머물렀다. 숙박은 언제나 T의 자취방에서 해결했다.


   옅은 소나기가 내리던 여름날도 그랬다. T는 자신이 활동하는 학회에서 방학 동안 그리스 비극에 관한 스터디를 한다며 나를 불렀다. 그거 외부인이 가도 되냐? 어, 내가 말해둘게 와라. T로부터 소개받은 철학과 사람들은 다들 친절했고,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대해 진지하고 깊은 성찰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스터디가 끝나고 뒤풀이에도 함께 따라갔다. 시간이 늦었지만 대화는 열대야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술잔과 술잔 사이로 수많은 이야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였을까, 오늘 어땠냐는 T의 물음에 나는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서울권 대학생은, 생각보다 훨씬 기득권이네.


   *

   꼬리칸 주민들은 감옥 칸에 감금되어 있는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를 풀어주고 그의 도움을 받아 계속 전진한다. 닫혀있던 문이 열릴 때마다 변화하는 세상에 놀라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처지와 비교되는 환경에 더 큰 분노를 느낀다. 열차의 지배자 윌 포드를 찬양하는 앞칸 승객들과 달리, 꼬리칸 주민들에게 그는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폭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서울에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부산에 남아 공장으로 출근해야 했다. 공업단지가 들어선 지역의 외곽에서는 편의점 하나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곳에는 똑똑한 교수님도 없고, 충고나 조언을 해줄 선배도 없고, 그리스 비극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 나눌 친구도 없었다.


   혼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고, 방송대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고, 참여하고 싶은 행사가 있으면 전화를 걸어 대학생이 아니어도 괜찮은지 물어야 했다. 누군가가 안정감을 느끼는 울타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 있음을 느낄 때마다, 나는 대학생이 아닌 이십 대가 있을 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


   괜한 소리 해서 미안하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며 나는 T에게 사과했다. 뭐 틀린 말한 것도 아닌데, 고삼들이 괜히 죽어라 공부하는 게 아니니까. T는 상관없다는 듯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이었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인적 드문 밤거리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남자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생각해보면 나도 입시 진짜 싫었는데, 결과가 좋으니까 그런 생각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T는 길게 한숨을 쉬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걸지도 모르고.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T는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증세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다음 해에는 휴학을 해야만 했다. 그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뻔뻔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차피 우린 다 같은 신세야. 저주받은 쇳덩어리, 기차 안에 갇힌 죄수들이지. 이 열차는 순환이 중요해. 공기, 물, 음식, 인구수까지 말이야.”

   커티스는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엔진칸에 도달한다. 동료들의 죽음과 반란의 목적을 복수로 이루어야만 한다. 하지만 정작 커티스를 마주한 윌 포드는 뜻밖의 말을 꺼낸다. 열차의 인구수를 조정하기 위해 반란은 언제나 꼬리칸과 공모되어 왔다는 것. 자신도, 꼬리칸의 주민들도, 그저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해왔을 뿐이라는 것.

   모든 진상을 들은 커티스는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윌 포드는 늙어버린 자신을 대신해 열차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관리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그토록 원망하던 대상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드려야만 하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자신이 하는 게 났지 않을까.


   *


   부산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나는 <Englishman in New York>을 들었다. 차창 밖 풍경과 함께 서울에서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그 도시의 누구도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정해진 자리를 강요받고, 벗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자꾸만 숨이 가빠 와서, 결국 옆자리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자판기에서 생수를 사 들이키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저게 하도 오래 닫혀 있으니까 이젠 벽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실은 저것도 문이란 말이야!”

   열차의 출입문을 가리키며 남궁민수는 소리친다. 눈이 녹고 있다고, 추위가 약해지고 있다고, 열차 밖으로 나가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그토록 열고자 했던 문은 ‘앞’과 ‘뒤’ 너머에 있었던 것이다. T와 나도 열차를 벗어날 수 있을까. 문이 열리면, 정말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모든 게 그저 정신 나간 소리에 지나지 않는 걸까.


   분명 한여름이었는데,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나는 지독한 한기를 느꼈다. 열차 안에서 반란을 꿈꾸던 커티스, 열차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윌 포드, 열차 밖 세상으로 나가려던 낭궁민수,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이방인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나는 닫힌 문을 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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