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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Apr 06. 2020

빨리 돈을 벌었던 우리에게, 돈을 빼면 뭐가 남는 걸까

‘빨리 돈 벌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면,

  S가 방을 구했다. 조용한 동네에 자리 잡은,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은 원룸이었다. K와 나는 집들이를 핑계로 주말 동안 그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한참을 떠들다, 돌아와서 적당히 긴 영화 한 편을 보고, 저녁으로 찌개인지 전골인지 알 수 없는 국물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산책을 다녀오면서 편의점에서 또 간식거리를 사 왔다.


  방은 전세로 했어? 나는 감자칩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어, 전세 대출 알아본다고 죽는 줄 알았다. S는 초코쿠키를 손에 든 채 대답했다. 그래도 매달 월세 내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은데. K가 곰 모양 젤리의 포장지를 뜯으며 말했다. 백만 배는 낫지. S는 에너지 드링크를 자기 컵에 옮겨 담으며 대답했다.


  전세 대출의 장단점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돈 관리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스물셋이었지만, 군대를 다녀온 K를 제외하면 모두 3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 말씀대로 했던 거 같은데. 어떻게 했는데? 월급 80%는 적금. 와 진짜 악착같이 모았네. 그래서 밥을 한 번 안 샀구나. 짠돌이. 스크루지. 칭찬 너무 고마웠고 이제 다 나가줄래?


  K와 나는 너스레를 떨면서 한바탕 웃었지만 새삼 S의 근면함에 감탄했다. 너네는 어떻게 했는데? 나는 얼마 전까지 군인이었으니까 패스. 군인은 아니었지만 나도 패스. 집에 보냈다고 했었나? 보냈지. 얼마나 보냈는데? 나는 말 없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들어 보였다. 한 번에? S가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전후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자세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별로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


  남들보다 빨리 일을 시작한 나는 당연히 남들보다 빨리 월급을 받았다. 중소기업 취업자들에게 주는 정부보조금을 합쳐 130만 원 정도의 급여가 들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월급 통장과 카드는 어머니가 관리했기 실제로 확인해본 적은 없었다. 대신 한 달의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았다. 그 돈으로 휴대전화 통신요금을 내고,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책을 사고, 주말에 가끔 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셨다.


  딱히 부족하거나 모자란 생활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장실습생이 끝나면 월급 통장을 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라도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적금도 넣고, 생활비 통장도 분리하고, 뭐 그래야 하지 않을까. 배우고 싶은 게 많았다. 여러 의미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돈 관리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스스로 해보는 쪽이 좋을 것 같았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다만 지금까지 번 돈은 중요한 일에 썼으니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묻지 않았다. 부모님의 조언대로 은행에 가서 청약통장을 하나 더 만들었을 뿐이다.


  *


  내가 선택한 방식은 단순했다. 월급이 들어오면 100만 원은 적금으로 넣고, 생활비를 제외하고 남은 돈은 다른 통장에 모았다. 그 돈으로 노트북을 사고, 일본어 학원에 다니고, 방송통신대학교 등록금을 내고, 서울에 올라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술 한 잔 정도는 살 수 있었다.


  계절이 돌아 다시 벚나무 가지에 분홍 봉우리가 맺히기 시작할 무렵, 첫 적금이 만기 됐다. 내가 모은 돈인데도 통장으로 들어온 금액을 확인하니 놀라웠다. 다음 날 회사에 외출 신청을 하고 은행에 가서 예금통장과 적금통장을 새로 만들었다. 성취감만큼이나 잘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좋았다. 괜찮아, 이렇게만 하면 돼.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서 돈을 보내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빚이 있는데, 이자를 너한테 주는 게 낫지 않겠니. 매달 얼마씩 갚아나가면 어떨까. 부모님은 여러 방안을 이야기했지만, 나에게 주어진 결론은 하나였다. 그래서 더 묻지 않고 예금을 깼다.


  *


  다음 해에는 한 번 더 돈을 보냈다. 1년 만기 적금에, 생활비를 아껴가며 모은 돈까지 전부 보내줬다. ATM의 이체 한도는 600만원이어서, 몇 번이나 같은 계좌와 비밀번호를 반복해서 입력해야 했다. 돈을 다 보내니 명세표 3장이 남았다. 손 안에서 구겨진 그 종이를, 나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지갑에 쑤셔 넣었다.


  대략적인 사정은 알고 있었다. 집 주인이 파산하는 바람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던 것도. 지금 집으로 옮기며 꽤 많은 빚이 생겼다는 것도. 급하게 돈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높은 이자를 내고 있었다는 것도. 부모님께 직접 듣지 않아도 적당히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집에 돈을 보낸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던 선배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K가 군대 가기 전까지 모아둔 돈이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서로의 사정을 나누는 일은 힘이 됐다. 그래, 나만 그런 건 아니지. 돈이 전부는 아니니까. 그보다 중요한 건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가끔, ‘빨리 돈 벌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해야 했다. 시간을 지식으로도, 경험으로도, 새로운 기회로도 온전히 치환하지 못한 우리에게 돈을 빼면 뭐가 남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공허한 마음으로 2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걸까.


  그 뒤로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적금을 들지 않았다. 다시 집에 돈을 보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별것 아닌 계획이라도 깨지고 부서지는 일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가올 미래보다 무서운 건,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도 아들한테 돈 달라고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애. 나는 마지막 남은 에너지 드링크를 컵에 옮겨 담았다. 테이블 위에는 더 이상 손을 뻗을만한 과자가 남아있지 않았다. 근데, 그래도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K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때문에 필요했다, 어디다 썼다, 고마웠다, 미안하다,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벽에 몸을 기대니 어깨가 무거웠다. 일주일 치 피로가 이제야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문득 이건 괜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도 한 번쯤은 확실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 돈도 쉽게 번 건 아니었는데.


  졸음이 몰려와 길게 하품을 했다. 언제 이렇게 지쳐있었던 걸까.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이 넘어있었다. 우리는 주변을 대충 정리하고 돌아가면서 양치를 했다. S가 침대에 눕고, 나와 K는 바닥에 누웠다. 잘 자라. 나쁜 꿈꿔라, 너도. 서로 인사를 하고 불을 껐는데 누군가 한 마디를 보탰다. 진짜 고생했다.


  뭘 고생했다는 거야, 하루 종일 놀기만 했는데. 대답하려 했지만 눈을 감으니 금세 잠이 쏟아졌다. 이불 속 공기가 적당히 따뜻했다. 오늘은 기분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이 되면 피로도 말끔히 사라져있지 않을까. 진짜 고생했다. 그 와중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깊이 위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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