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관계에 서툰 세대인 걸까
community - 라틴어 communis, ‘같이’, ‘모두에게 공유되는’ 이란 뜻에서 유래. Communis 는 접두사 con- (함께)와 munis (서로 봉사한다)의 합성어.
어느 시대든 도시를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 그건 도시가 향할 지향일수도, 감춰진 도시의 내면을 해부하는 진단일수도 있다. 둘 중 무엇일지는 모르나, 오늘의 시대를 관통하는 단어가 ‘커뮤니티’임은 자명하다.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도 ‘커뮤니티’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 혹은 수익을 위한 수단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오늘의 도시가 꺼낸 단어 ‘커뮤니티’는 어딜 향하고 있을까. 커뮤니티로 연결되는 새로운 삶을 향한 지향인걸까 아니면 도시의 결핍을 드러내는 아픈 진단인걸까.
정확한 답을 내리긴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단어들처럼 한 차례의 거친 파도가 지나가고 나서야 오늘의 열기가 무엇을 남겼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선 글에서 지역을 넘나들며 펼쳐진 커뮤니티와 로컬에서 이어가는 다양한 시도를 전했다. 고민과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중에서도 유독 진한 향기를 남긴 커뮤니티는 집단보다 참가한 개인을 우선하는 곳이었다.
크기에 쫓기고 성과에 쫓기다보면 커뮤니티는 쉽게 개인을 잃는다. 성별에 대한 표시 여부, 식단에 대한 선택. 집단의 편의 앞에 개인성이 소거되지 않도록, 여전히 독특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작은 문을 열어두는 커뮤니티는 같은 내용이라 하여도 달랐다. 한 명의 참가자로서 또 개인으로서 발견한 아주 사소하고 중요한 차이. 커뮤니티 운영자는 기발함, 재미, 의미에 성과가 달려있다 생각하지만 참가자에겐 ‘내가 누구로서’ 참여하느냐에 따라 집단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거대한 집단에 들어가 그들의 논리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건 이미 충분히 해왔던 일이다. 새로운 관계에 접속하며 기대하는 건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비슷한 표정을 가진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나의 단어를 유지하고, 나의 문제의식을 지켜내고, 내 호흡에 따라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시공간을 우리는 갈구하는 것이다. 그동안 청년세대를 관통해왔던 단어는 ‘개인’이었다. 기성 사회가 마주해보지 못했던 나의 것과 나의 자리에 대한 요구가 거세가 꺼내졌기 때문이다.
집단에 맞춰 나를 희생했던 세대에게 이런 언어는 ‘이기심’과 가까웠고 여전히 ‘개인주의’란 단어로 청년 세대를 해석하고 있다. 만약 정말 개인을 쫓는 세대라면 왜 이들에게서 ‘커뮤니티’가 꺼내지는 걸까. 현상을 분절해 바라보기 보다 흐름을 쫓아 보자.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세대가 이젠 혼자 노는 걸 즐기는 사람들끼리 뭉치고 있다. 결국 나와 취향이 같은 이들과의 결합이었다. 다시는 집단에 먹히지 않으려는 노력. 일상이 무너지지 않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적당한 관계의 선을 이제야 찾아낸 것이다.
질서를 만든 기성 앞에 새로운 세대는 언제나 조금씩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갈 뿐이다. 안전이 담보되자 변화가 시작된다. 룰을 따르던 시간을 지나 새로운 자리에 대한 필요와 내 자리에 대한 요구가 시작된다.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이젠 관계를 편집하는 시대가 되었다. 편집을 위해서 나의 취향을 발견해야 하고 그렇게 커뮤니티를 통해 새로운 나를 찾는다. 더 좋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세상 속 다양한 나를 만난다. 순응하고 적응하던 구조가 아닌 내가 머물 곳을 새롭게 선택하는 시간. 우리는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집단은 개인의 집합이라는 아주 단순한 명제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커뮤니티가 시작된다.
우리는 언제나 도시를 해석해왔고 전국적으로 발현되는 커뮤니티를 보며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정말 관계에 서툰 세대인 걸까. 우리는 정말 개인적인 세대인걸까. 커뮤니티는 새로운 삶을 향한 지향인걸까 아니면 도시의 결핍을 드러내는 아픈 진단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