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한 동기는 나의 일상에서 시작된 ‘내적 동기’다
다양한 커뮤니티를 접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직접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혹 커뮤니티를 다니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이들과의 연결이 강하게 끌릴 때가 있을 것이다. 커뮤니티는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집단이지만 그만큼 어떻게 시작해 무엇으로 마무리해야할지 설계의 단계에선 많은 것이 모호하게만 느껴지는 영역이기도 하다. 만약 커뮤니티를 시작하고 싶다면, 지금 당신만의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면. 서로에게서 더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는 단단한 커뮤니티를 위해 시작과 운영에 도움이 되는 짧은 가이드를 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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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나의 욕구에서 시작하기
커뮤니티는 한 번에 종료되는 이벤트가 아닌 긴 호흡으로 이어가는 마라톤에 가깝다. 나의 욕구를 참가자에게 설득하는 것부터 꾸준히 지속해나가는 것까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보다 중요한 건 관계를 놓지 않는 강인한 지구력. 다른 프로젝트처럼 눈에 보이는 뚜렷한 결과마저 없기에 커뮤니티 운영자의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 우리가 왜 모이고 있고 이 연결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커뮤니티 운영자가 자신의 언어로 정리해내지 못한다면 커뮤니티의 매력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철학반찬의 기획자 아토, 자작곡워크숍 메마뮤의 기획자 눈썹, 슬기로운 음악생활의 기획자 대한. 세 사람이 운영한 커뮤니티의 분위기와 성격은 달랐지만 모두 제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시작된 커뮤니티라는 구조는 동일하다. ‘나 이거 해 보고 싶어’ 영글지 못한 시작은 언제나 모호하지만 커뮤니티는 그런 거칠고 강한 동기로 시작할 수 있다.
나 역시 여름부터 겨울까지 너무 바쁜 업무로 지쳐있을 때 시사토론모임 ‘더 폴리티카’를 시작했다. 소진된 나를 발견하며 새로운 자극과 지식을 채우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형태와 내용은 다음 문제다. 가장 중요한 건 다듬어지지 않은 커뮤니티의 시작을 돌파할 수 있는 내면의 욕구. 타인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포맷은 커뮤니티의 동력이 안정화되었을 때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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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주변의 필요에서 시작하기
바쁜 일상을 보내는 친구들은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원했다. 하지만 그 쉼이라는 것이 세상과의 단절을 뜻하진 않았고 세상 속에서 세상과는 아주 조금만 다른 어딘가, 타인과 연결되지만 그렇다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할만큼 너무 가깝지는 않은 관계를 지향하고 있었다. 어느 때엔 대화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 마저 피로하다. 적절하게 보장된 익명성과 나를 온전히 꺼낼 수 있는 솔직한 공간. 조금의 고민이 더해진다면 우린 두 가지의 상반된 욕구를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다.
생각하는 바다에서 진행한 ‘오늘의메뉴’는 온전히 듣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서로 인사를 안내하지도 않고 대중 앞에서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아도 되는. 그저 낯선 타인 속에 섞여 또 다른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오늘의 도시엔 내가 누군지 밝힐 필요 없이 그저 사람에게 섞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동시에 철학반찬은 각자의 진솔한 생각을 꺼내는 공간이었다. 모든 참가자는 닉네임을 사용해야 했고 자신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드러날 일상을 감추기 위해 오늘 하루 나를 지배한 감정만으로 서로를 파악하게 했다. 가령 어디에 살며 어느 대학을 나와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정보로 나를 소개하는 게 아닌 오늘 나를 지배했던 감정은 ‘떨림’이고 그 감정이 찾아온 사건은 무엇인지를 통해 나를 소개하는 것이다.
경쟁의 원리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약해지지 않으려면 겉과 속의 모습을 다르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내면의 솔직한 모습이 드러내기 위해선 겉으로 드러나는 나를 다시 감추어야만 했다. 나의 욕구에서 확장해 함께 살아가는 주변의 필요를 관측한다면 보다 많은 사람이 편하게 공감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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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지역의 시선에서 바라보기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접근이 시도되지만 오프라인 커뮤니티는 여전히 다른 무엇보다도 로컬 지향적이다.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맞닿고 서로의 표정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시선에서 결핍과 강점을 바라본다면 보다 넓은 의미의 커뮤니티를 기획할 수 있다.
북커뮤니티 사과에선 수도권의 작가를 초청해 지역 독자들과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을 이어간다. 지역에선 유명 작가와의 만남을 갖기 힘들다는 결핍에 주목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책을 매개로 한 강연을 기획하고 이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담는 강연으로 점차 확대해나가고 있다.
역으로 지역의 강점을 활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역 문화재단이 지원하는 예술가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광안리 바다를 활용한 힐링 커뮤니티를 계획 중이다. 바쁜 업무를 보내는 일상 중 붉은 노을의 끝자락과 함께 광안리 바다에 부드러운 천을 깔고 호흡과 숨을 다스리는 힐링 프로그램이다. 지역의 특징을 면밀히 관찰한다면 나의 욕구에 공감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갈 시도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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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커뮤니티를 넘어 살롱이란 단어까지 익숙해진 우리가 되었다. 커뮤니티 기획의 시작은 일상을 돌아보는 것. 가장 강한 동기는 나의 일상에서 시작된 ‘내적 동기’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도 좋고, 내가 사는 지역 혹은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모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좋다. 어디서 본 것 같고 이미 다른 곳에서 하고 있는 모임이어도 괜찮다. 커뮤니티의 창의성은 시작의 단계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가장 나 다운 욕구에서부터 시작해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하나씩 변형하는 것에서 세상에 없던 독특한 나만의 커뮤니티가 다듬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