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가 시작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커뮤니티가 시작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우리는 만남에서 커뮤니티가 시작된다 생각하지만 진정한 연결은 오히려 헤어진 이후에 시작된다. 어느 때엔 자주, 또 쉽게 볼 수 없다는 적당한 거리감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이어주기도 한다.
2018년의 겨울, 지역의 선배들과 함께 광안리 끝자락에서 ‘생각하는 바다’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막 시작하던 해였다. 공간 대표님을 통해 광양에서 보내온 초대장을 받게 되었는데 각자의 로컬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과 계획을 공유하는 광양의 작은 교류회 자리였다.
그날 광양을 찾아온 분들은 모두 진지했고 뜨거웠다. 청년들과 함께 마을 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역을 새롭게 개척하는 분도 있었고, 재개발로 곧 사라질 공간을 찾아 예술가와 함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분도 있었다.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발표만 지켜보던 나였다. 우리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지 않았던 우리의 모습이 작게만 보였다. 눈에 띄는 성과는커녕 이렇다 할 작은 활동마저 없어 거대한 포부마저 너무 작게만 보였다.
떨리는 걸음으로 단상에 나가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슬라이드에 담긴 건 앞으로 이런 공간이 되겠다는 꿈들뿐. 조금은 치기 어린, 어쩌면 여물지 못한 바람들. 나 스스로도 만족하기 힘든 발표에 축 처진 어깨로 최대한 벽에 가깝고 조도가 낮은 곳을 찾아 머무는 뒤풀이 자리였다. 조용히 있다 내려가야겠다 생각하던 찰나, 멋지게 활동하던 각 지역의 분들이 내게 다가와 바다에 대한 흥미와 기대를 전해주었다.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느낄 수 있을 진심어린 환대와 응원. 우리의 대화는 약속으로 갈무리되었는데 언젠가 공간에 찾아주시면 꼭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겠다는, 그리고 꼭 부산에 들리겠다는 다음 연결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3주 뒤 광양에서 만났던 청년팀이 부산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함께 바다를 걸었고 커피를 마셨고 각자의 지역에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맞춰보았다. 함께 사진을 찍도 또 다음 연결을 위한 약속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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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의 이어짐은 만남의 순간이 아니다. 그보단 헤어짐 이후 다음 연결을 약속하고 다시 서로를 향한 걸음이 이어질 때에 진정한 커뮤니티가 시작된다. 광양에서 만났던 인연은 그 외에도 길게 이어졌다. 광양의 어느 치킨집에서 지역의 후배 세대를 위해 다양한 구조를 고민하던 분은 따뜻한 5월이 되어 우릴 광주로 불러주셨다. 겨우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약소한 참가비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안락한 숙소, 맛있는 음식과 또 다른 연결을 위한 작은 살롱이 밤늦도록 펼쳐졌다. 거리가 멀고 지역이 달라도 우리의 연결은 끝까지 놓아지지 않았고 이 모든 수고와 의지는 같은 영역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펼쳐졌다.
나는 타고난 성향이 내향적이고 겁이 많아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도 내어주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니 매일이 딜레마이지 않을까. 그런데 따스한 햇볕에 겉옷을 벗는 것처럼 이런 나의 성향을 이해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성향조차 달라지고 있다. 지역을 넘는 커뮤니티를 통해 나 역시 굴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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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만나지 못해도 내가 써낸 글과 사진의 표정만으로 나의 감정을 읽어내는 사람이 있다. 겨우 스치듯 만난 두세 번의 자리가 전부였지만 창원의 한진 대표님은 내 건강을 염려해 갑자기 쌍화차를 보내주기도 하고, 쉬엄쉬엄 하라며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주기도 한다. 매순간 진심을 다하는 그를 닮아 다시 타인을 향한 기대가 생기고 내가 그에게 받은 것처럼 다시 내 주변을 챙길 수 있는 넉넉한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작은 모바일 기기로 세상의 문화를 바꾼 스티브 잡스는 지난 걸음을 돌아보며 지나온 모든 일은 작은 점이 되고, 과거의 점들을 하나씩 이어갈 때 미래를 향한 선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커뮤니티라 칭하는 우리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의 만남은 강렬한 하나의 점일 뿐이다. 연결은 하나의 큰 점을 찍는 것이 아닌 찍어낸 순간순간의 점을 이어 하나의 굵은 선으로 이어내는 것. 순간을 넘어 다음을 향하는 지속적인 나아감인 것이다.
커뮤니티가 시작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이 내가 헤어짐을 마냥 아쉽게만 생각하지 않는, 아니 만남의 이후를 설레어하고 우리의 다음 점은 어느 곳에서 어떤 점으로 찍힐지 기대하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