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늘 이 질문을 받고 싶었어요.

시인에게 아버지는 '바다'였고, 나에게 아버지는 '돼지국밥'이었다

by 호밀밭
play-stone-1237457.jpg

무엇이든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사람을 초대해 그의 이야기를 꺼내듣고 예기치 못한 내면을 마주하는 기쁨 또한 점점 둔감해져갔다. 어색하기만 했던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직함도 익숙해졌고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의 떨림도 미세해졌다. 오늘 밤 내가 맞이할 사람은 시인. 정식 등단하진 않았지만 자기의 자리에서 담담히 글을 게워냈던 사람이다. 비록 세상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시인이지 않을까. 우리 공간은 오늘 행간에 담긴 삶을 들으려 이승재 시인을 초대했다.


이승재 시인은 키도 컸고 얼굴도 컸고 팔다리도 쭉쭉 길었다. 유리문을 열고 걸어 들어오는 신체에서부터 나를 압도했는데 거대한 신체와 달리 그가 꺼내는 말의 속도와 온도가 느리고 따뜻해 무언가 기묘한 느낌마저 전해주었다. 이승재 시인이 엮어낸 시집의 제목은 ‘마개 없는 것의, 비가 오다’. 어떤 상황에서 꺼낸 문장인지 쉽게 짐작되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이유를 듣고 싶어 먼저 묻지 않았다. 오시는 길이 어렵지 않으셨냐고, 혹시 식사는 하고 오셨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너무 민망해하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했다. 이런 환대와 관심이 어색한 듯 보였다.


*


세상은 너무 빠르게 돌아간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릿느릿 이어가는 시의 호흡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최근 공간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시를 주제로 준비한 프로그램의 참가자 역시 많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굳게 먹은 마음보다도 신청해주신 분의 숫자가 적었다. 부족한 참석자에 민망했다기보다 어색한 강연의 자리에 용기 내어 오를 시인에게 미안해졌다. 처음의 경험을 조금 더 부드럽게 선사하고 싶었는데 함께 눈을 마주치며 시를 공명할 참가자가 적어 혹시 실망하지 않을까 내내 염려되었다. 비어있는 의자를 마주하게 하고 싶지 않아 조심스레 하나씩 의자를 뒤로 물리며 조금 더 쉬운 언어로 홍보 포스터를 만들어야 했나 깊어지는 고민.


공지한 시간이 다되어 시인과 당일 진행을 맡은 공간 대표님이 무대에 올랐다. 우리 공간 대표님은 국문학을 전공해 어린 시절 시인을 꿈꾸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한국 문단의 공식적인 인정을 획득하지 못한 두 시인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시인과 눈을 마주치며 응원하고 싶어 그와 가장 가까운, 무대의 바로 앞 의자에 앉았다. 대표님은 먼저 참석자들의 언어로 이승재 시인의 문장을 나눠보자 했다. 한 사람씩 이승재 시인의 시집을 꺼내들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한 편을 골랐다.


*


사삭- 고요한 침묵 속 빼곡한 감정이 담긴 시가 넘어가는 소리. 사람들은 집중해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시 한 편씩을 골랐다. 내가 고른 시는 이승재 시인의 ‘저녁기도’. 그가 펴낸 문장 중 ‘숟가락을 함께 드는 시간이 하루치 상처를 보듬는 시간’이라는 연결에 웃고 말았다. 내가 해왔던 지난 시도와 이 공간에서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이와 같았다. 하루가 끝나는 시간에 만나 함께 숟가락을 들며 서로의 감정을 묻는다. 커뮤니티라는 생소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조금만 단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익숙하고 편안한 행위가 숨어있다. 숟가락을 든다- 상처를 보듬는다- 커뮤니티는 어려운 단어가 아니다. 잃었던 것을 되찾는 것이 어려울 뿐.


시집에 담긴 가장 마지막 시는 '묘비명'. 묘비명은 ‘바다’와 ‘바람’이 주인인 시였다. 작가가 쓰는 문장엔 언제나 주인이 되는 단어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투영된 단어가 하나씩 있는데 시집의 목차가 모두 바람인 걸 보고 이승재 시인의 단어는 '바람'이라 짐작했다. 그렇다면 바다는 누구일까. 눈치만 보다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 시인에게 ‘바람은 누구를 향한 단어’인지 물었다. 이승재 시인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늘 이 질문을 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야 이 질문을 받네요. 바람은 저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마음을 문장으로 표현해냈던 이승재 시인. 처음 만났지만 이상하게도 직관적으로 많은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궤적과 시인의 궤적이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투, 그의 눈빛, 그의 표정에서 나와 닮은 많은 것이 전해졌다. ‘이십 대엔 왜 그렇게 죽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웃음에서 너무 많은 것이 들려온다. 시인에게 아버지는 '바다'였고, 나에게 아버지는 '돼지국밥'이었다. 부산의 많은 아버지를 만나며 그들의 삶을 듣고 담아냈던 나와 그는 닮았다.


*


나의 필명은 ‘바람꽃’이다. 모든 강연이 끝나고 시인을 찾아가 나 역시 나의 단어로 바람을 두고 있다고 말하자 시인은 내 시집에 '멈추면 사라지는 님께'라 적어주었다. 시인에게도 나에게도 사라지는 것은 꿈이며 언제나 소망하는 것이자 삶의 종착지다. 이웃의 땀을 식히고 고단한 삶에 짧은 쾌활함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 나와 그의 정체성이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쫓아 달려왔던 지난 시간이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꺼내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을 초대해 내던 내가 그동안 이런 감각을 잃어버렸다. 타인과 깊게 연결될 때에 느껴지는 진한 감동 말이다. 무엇이든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매일 진행자로 앉아있다 참석자로 앉아 시인과 눈을 마주쳤던 경험은 둔감해진 나의 감각을 다시 일깨우기 충분했다.


이런 질문을 기다렸다는 시인의 말과,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으로 말한다는 문장에 행복했다. 언제나 문장의 완성은 삶이고 관계의 끝은 나를 향한 타인의 질문이어야 한다.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역할에 둔감해진 순간 나의 새로운 역할을 찾게 되었다. 질문을 찾던 사람에게 질문을 건네고, 서로 닮은 사람이 만나게 하는 일. 커뮤니티 매니저의 역할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같은 시선으로 거리를 바라보자 많은 사연이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