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커뮤니티는 다가간다는 것이고, 곁에 함께 선다는 것이다
2014년의 거리는 유독 좁았다. 돌아올 갈 곳이 없는 이들에게 거리는 벽이었고 일터이자 집이었다. 나만 누릴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있지만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돌아오지 않는 곳을 더 이상 집이라 부를 수 없었다. 집을 세운 뼈대는 차디찬 철골이지만 빈 공간을 채운 건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관계와 추억. 순간에 모든 걸 빼앗긴 부모들은 황망한 마음으로 거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쉬이 짐작할 수 없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건 앞에 당황한 건 우리 모두였다. 판단도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이 서 있는 거리와 내가 서 있던 거리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멘트 블록의 차가운 질감도 그랬고, 피켓을 세울 곳이 없어 바닥 곳곳에 기대 세워둔 방식도 나의 지난 경험과 닮았다. 내가 서 있던 거리와 닮은 차가움. 무엇이 문제이고 누구를 향해서 말해야 하는지 예리한 논리를 갖추지 못했지만 거리 위에 서 있을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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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쌀을 가져다 준 사람들처럼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곁에 함께 서 있고 싶었다. 그들이 마주하게 될 눈빛과 표정이 무엇일지 알고 있다. 불편함과 경계의 눈동자. 검은 동공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비칠 때 외로움은 시작된다. 그들을 홀로 서 있게 할 수 없었다. 그해 가을부터 시작해 더 이상 뉴스가 아닌 바로 곁에서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만났다. 6개월 내내 들었던 피켓이지만 노란색 골판지 위에 담긴 슬픔은 구체적이고 절절했다. 다시 나선 거리는 차가웠다. 내가 견뎌내야 했던 건 무시와 냉소였지만 유가족분들이 견뎌야 하는 건 조롱과 멸시, 구체적인 폭력이었다.
눈앞에 놓인 사람을 두고 누군간 노트북으로 상황을 담았다. 관찰된 글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깎아냈다. 비아냥이 가득한 문장은 두 의견 사이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한 축의 해법을 모든 곳에 적용했다. 거리의 사람과 마주하지 않은 사람들이 ‘한 발 물러선 거리감’의 가치를 말한다. 강렬한 고통은 개인이 홀로 겪어내야 하는 공허와 연동된다. 고통에 대한 위로는 그를 홀로 두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의 문을 두드렸고, 장애란 장벽으로 건네지 못했던 인사를 전했고, 경쟁으로 만나지 못하던 청년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복잡한 사건일수록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게 가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택한 건 나의 지난 선택이 그런 것처럼 거리의 이들과 더욱 함께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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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선으로 거리를 바라보자 너무 많은 사연이 그곳에 놓여 있었다.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수백시간을 거리에서 먹고 자는 분들, 나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철탑 위에서 계절을 보내는 분들. 국가권력에 맞서 권리를 외치는 분들. 동거차도와 팽목항, 밀양과 광화문, 구의역과 강남역. 정말 나와 같은 시공간의 사건인지 의아할 정도로 알지 못했고 드러나지 않았던 목소리가 많았다.
적당한 말은 늘 미루게 되고. 평소처럼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언제나 모든 관계엔 슬픔이 녹아있다. 지난 단절의 경험이 상처의 깊이를 가름하기 때문이다. 감정은 언제나 구체적이기에 그에 걸맞는 행위 또한 구체적이어야 한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쇠귀 신영복 선생님이 전한 말이다. 오늘의 나를 설명하는 단어 ‘커뮤니티 매니저’. 내게 커뮤니티 매니저는 모임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이 전부이지 않다. 우리가 같은 입장에 서게 하고 서로의 시선을 연결해가는 것. 입장의 동일은 서로가 서 있는 곳이 같을 때 성립한다. 다른 세상을 살던 우리를 같은 지평에 서게 하고 곁에서 서로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입장의 일치를 향한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내게 커뮤니티는 다가간다는 것이고, 곁에 함께 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