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모은 쌀로 낯선 어르신과 밥을 지어 먹었다

적당한 매개자가 있다면 우리의 세상은 서로 연결될 수 있다

by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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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다를 것 없는 출근길에 나타난 낯선 존재였다. 이질적 존재를 대하는 사람의 눈빛은 차가웠다.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치 엑스레이를 찍듯 존재 자체가 온전히 평가받는 느낌. 낯선 이유만으로 눈길을 끌기 충분했던 나는 그보다 더한 불편함이 담긴 피켓을 거리에 잔뜩 세워두었다.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무슨 억울한 일이라도 있는가 싶어 걸음을 멈추고 나와 피켓을 번갈아가며 빤히 쳐다보았다.


첫 날에 마주한 표정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불편함. 걷는 것만으로도 피곤한 출근길, 마음을 건드리는 피켓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없다면 외면하는 것이 나의 감정과 자아를 지키는 일이다.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게 쌀을 가져다주려면 바쁜 아침부터 거리에 서있던 날 떠올려야 하고, 혹시나 내가 없어 회사까지 쌀을 들고 가진 않을까 몇 번의 주저함도 넘어서야 했다. 내가 해야 할 건 오늘도 그 자리에 서서 당신을 기다릴 거란 확신을 심는 일이었다. 비가 오는 날도 우산을 들고 서있었고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공휴일에도 나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서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


하루를 여는 사람들은 늘 같은 시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처음이야 신기한 눈빛으로 날 보았지만 이젠 그마저 익숙하다는 듯 나와 피켓을 요령껏 피해 지나쳤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난 도로 위 수많은 사람이 그렇듯 또 하나의 정물이 되었다. 마치 쇼윈도 안에 있는 마네킹처럼, 거리의 청소부처럼, 돗자리에 자질구레한 물건을 두고 파는 사람처럼.


거리로 나선지 4일째 되던 목요일.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제법 익숙해질 때였다. 여름 교복을 입은 학생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아저씨 이거 뭐하는 거예요?”

“여기서 쌀을 모으고 있어. 사람들이랑 모은 쌀로 어르신들께 밥 해드릴려고.”

“아. 그럼 내일 가져올게요.”


싱긋 웃으며 가벼운 다짐을 한 학생은 다음 날 약속처럼 한 봉지 가득 쌀을 가져다주었다. 거리에 나선지 딱 5일째 되던 날이었다. 용기를 냈던 도전이지만 실제로 누군가의 응답을 받을 것이란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내 주변의 그 누구도 쌀을 모을 수 있을 거라 얘기해주지 않았다. 학생이 가져다준 쌀 봉지가 너무 고맙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서있었다. 나와 그녀는 그렇게 연결되었다.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누군간 날 지켜보았고 나는 꾸준히 서있었기에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그동안 꺼내지지 않던 나의 목소리를 들었고 어른이 되지 못해 미숙하다 평가받는 존재의 열린 마음과 용기 그리고 밝은 웃음을 보았다. 우리의 마주침과 대화가 이 거리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했다. 학생의 다가감은 다른 이의 계기 그리고 부끄러움이 되었다. 난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그리고 그 다음 주까지 꼬박 4주를 한 자리에 서있었다. 서로의 존재가 인식되기 위해선 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사람들은 이제 나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


나의 존재가 고정되자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가 밝은 미소와 함께 포도 음료가 전해졌다. 어르신과 함께 먹으라며 반찬거리와 손편지를 전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아침까지 생각했는데 깜빡해 쌀을 챙겨 나오지 못했다며 근처 슈퍼마켓에서 급하게 쌀을 사다주는 사람도 있었다.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머무르면 연결은 시작될 수 있다. 한 사람의 변하지 않음이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렇게 부산 여섯 개의 행정구를 돌았다. 부산진역 앞에선 거리의 노숙인과 함께 대화하며 피켓을 들었고, 장산역에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유난히 내게 차가웠던 지역도 있었고 피켓을 놓아둔 지 3일 안에 쌀을 받는 지역도 있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쌀을 모아 금요일 점심이면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뵈었다. 잔기침이 많던 한 할머니가 있었다. 우린 함께 점심을 나누고 두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이런저런 사는 얘기는 나눴다. 그리고 몇 주 뒤 할머니는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나셨다. 한참 지나서야 할머니를 담당했던 사회복지사에게 전해 들었다. ‘선생님이 다녀가시고 나서 얼마나 밝아지셨는지 몰라요. 다음에 또 함께 밥을 먹고 싶다고 기다릴테니 꼭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


누군가에겐 오늘이 아니 이번 한 주가 생의 마지막 시간일 수 있다. 우린 모두 끝의 순간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당장의 연결이 중요한 것이다. 오늘을 바꿀 수 있다면 어쩌면 생의 마지막 감정을 바꿀 수도 있다.


낯선 사람에게 모은 쌀로 낯선 어르신과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만날 수 없고 연결될 수 없던 두 존재가 작은 쌀을 통해 연결되었다. 적당한 매개자가 있다면 우리의 세상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던 서로를 연결해내는 일. 그렇게 우리는 언제가 될지 모를 생의 마지막 순간을 늘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내가 커뮤니티 매니저라 불리는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이고 커뮤니티란 영역에 발을 디디게 된 첫 번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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