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혼자이고 싶던 나와 달리 어르신들은 아무도 찾지 않아 혼자였다
스물의 시작부터 가벼운 우울증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삶의 의욕을 잃고 무미한 시간만을 먹고 있었다. 다시 의미를 되찾고 싶어 글을 써보고 요리를 직접 해보기도 하고 봉사활동이라 불리는 일들을 보이는 대로 해내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간절히 답을 찾고 싶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내 삶은 쓸모가 없었다.
그 당시 세계여행을 꿈꾸었다.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고 싶다는 푸른 꿈보단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숨어들고 싶었다. 남은 평생을 홀로 지낼 수 있다면. 나를 찾을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가면 나에 대한 고민도, 나에 대한 혐오도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독했지만 외롭지 않았고, 희망이 없었지만 절망적이진 않았다. 고독은 분명 나와 가까운 단어였다.
고독사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2013년 1월이다. 뉴스에 나온 고독사는 백골이란 단어를 만나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 생경하다. 21세기 뉴스에서 만나는 단어가 백골이라니. 쉽게 상상되지 않는 단어다. 그런데 그해 부산은 참 많은 분들이 백골로 발견되었다. 1월에도 2월에도 푸른 잎이 돋아난 5월에도 백골이란 단어는 꺼내졌다. 홀로 세상을 떠난 분들은 모두 몇 개월 만에야 발견되었다. 어떤 분은 2년, 어떤 분은 5개월이었다. 2년이란 시간 앞에 5개월은 사뭇 빠르게 느껴질 정도다. 발견되는 이유는 같다. 악취와 밀린 공과금. 타인의 부재는 내게 불편함을 주는 존재가 되어서야 살아난다.
내내 혼자이고 싶던 나와 달리 어르신들은 아무도 찾지 않아 혼자였고, 아무도 두드리지 않아 혼자였다. 고독을 택한 내 곁엔 나를 걱정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지만 함께 이고 싶던 어르신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댓글 창의 사람들은 추모와 함께 변하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무엇이든 해야 한다. 아무도 두드리지 않는다면 문은 그저 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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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저 고독을 쫓던 나였기에 꺼내지지 않은 외로움이 얼마나 무거운지 짐작할 뿐이었다. 단순히 백골 사체라는 말 앞에 더는 무력해지고 싶지 않았다. 문구점에서 하드보드지와 코팅지를 사왔다. 첫 번째 피켓엔 고독사가 왜 우리의 문제인지, 그래서 우리가 누굴 기억해야 하는지 적어두었다. 두 번째 피켓을 들기 전 책장에 꽂힌 에리히 프롬의 책을 꺼냈다. ‘사랑한다는 것은 관심을 갖는 것이며, 존중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며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주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들의 적극적 관심인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 관심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그가 남긴 사랑의 문장을 두 피켓에 나눠 담았다.
마지막 피켓에 무엇을 적을지 고민했다. 거리에서 만나는 짧은 순간이지만 사람들과 내가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았다. 만일 우리가 각자의 동네에서 마주한 이웃을 조금씩만 더 염려할 수 있다면. 어제 보이던 어르신이 오늘 왜 나오지 않는지, 나눈 인사말 뒤로 내뱉은 숨이 유난히 무겁진 않은지 조금씩만 집중해본다면 이 외로운 마지막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돈을 모으고 싶진 않았다. 개인의 존재보다 우선되던 미납금이 싫었다. 우린 돈이 아니어도 관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장 꺼낼 수 있는 마음, 그 너머의 것이 필요했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생각에 빠져있는 내 뒤로 바쁜 소리가 들려 온다. 도마에 부딪히는 칼의 소리, 싱그럽게 부서지는 채소 소리, 가스레인지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 소리. 누군가 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정성스런 부엌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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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피켓에 정해질 문구가 정해졌다. ‘한 스푼의 쌀을 모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모아 홀로 계신 어르신들과 따뜻한 밥을 나누려 합니다.’ 거리에서 쌀을 모아보기로 했다. 모인 쌀과 함께 어르신의 식구가 되기로 했다. 사람들이 쌀을 들고 다니지 않는데 어떻게 모을 것이냐는 주변의 만류에 그럼 날 기억할 때까지 오래 서 있겠다고 말했다. 날 기억해 내일의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의 문을 두드릴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역을 따라 부산을 크게 돌기로 했다. 한 자리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7시부터 9시 정각, 4주씩의 캠패인을 계획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할 테니 나를 기억할 수 있을 거야.
거리에서 어떤 시선과 마주할지 어느 하나 자신할 수 없었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월요일 새벽 6시 20분. 피켓을 챙겨 집을 나섰다. 또 다른 고독사를 바라볼 땐 무엇이든 시도한 나여야 했다. 낯선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처음 와보는 곳이다. 사람의 이동이 많은 출구로 건너가 준비한 피켓을 걸어두었다. 내 앞엔 쌀을 모으는 작은 플라스틱 통이 놓여있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