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곁에 많을수록, 나는 단단해졌다

나의 가능성은 그동안 외면했던 주변부에 깃들어 있었다

by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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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표님은 왜 부산에 있는 다른 청년단체하고는 만나지 않나요?’ 따끔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깊게 감춰둔 부끄러움을 정확히 짚어낸다. 하나둘 동료가 생기자 점점 쌓여가는 주변의 기대. 이제 청년 커뮤니티 ‘바람’의 활동이 무엇을 남기는지 그래서 우린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구체적 언어로 설명해야했다. 해낼 수 있는 여러 지원사업에 기획서를 넣었다. 붙는다면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것이고, 떨어진다면 그대로 중간점검이 될 테니 어찌되었든 우리를 모르는 3자에 의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했다.


팀원을 통해 해외사례 탐방을 지원하는 청년 사업 링크를 받았다. 꼭 해외에 가보고 싶다거나 만나보고 싶은 단체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문서로 우리의 활동을 정리하고 향후 계획을 써보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연습 삼아 제출한 것이 덜컥 선정되어버린 것이다. 넉 달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고된 멘토링을 받았다. 제대로 된 사업경험도 없고 의지와 목표 하나만으로 뭉친 이십대 중반의 평범한 청년들. 사업계획서를 쓰는 것부터 정산까지 어느 하나 해본 적 없는 일 투성이라 매일이 실수였고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서툴었다. 심지어 서울에선 길을 잃어버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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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6개월 내내 스파르타식 멘토링을 거쳐 겨우 정한 탐방지 일본. 우리가 왜 일본을 가야 하는지 우리가 왜 일본의 청년들을 만나야 하는지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진심을 다해 발표했다. 그동안 주욱 나를 보아왔던 멘토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은 왜 부산에 있는 다른 청년단체하고는 만나지 않나요? 청년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 거라 하셨는데 일본에 있는 청년들보다 같이 활동하는 다른 팀을 만나는 일이 우선이지 않을까요?”


그동안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혼나기도,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내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걸출한 기업을 운영하는 분들 앞에서 ‘동아리 수준의 팀’이란 말을 들어도 개의치 않았던 나인데 멘토의 한 마디. 내 안에 감춰둔 타인과의 경쟁심이 꺼내졌을 때 귀부터 목까지 새빨개지고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출 수 없어 고개만 푹 숙이고 말았다.


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만나야 했지만 만나지 않았다. 같은 목표와 꿈을 가진 동료를 골랐고 배제했다. 그들은 내가 설정한 ‘청년’에 포함되지 않았다. 내가 부르짖었던 커뮤니티는 딱, 반쪽짜리 커뮤니티였던 셈이다. 그저 내가 운영하는 단체가 지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의미 있는 커뮤니티이길 바랐다. 다른 단체는 같은 대상을 두고 경쟁하는, 지난 논리와 익숙하게 작동하는 ‘경쟁하고 이기고 올라서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좁은 지역을 떠나 해외의 청년을 만나겠다던 말이 힘을 잃었다. 나의 지역을 좁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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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더 큰 커뮤니티가 되겠다는 마음. 커뮤니티를 외쳤고 나의 정체성은 타인과의 연결이라 외쳤지만 사실 그 안엔 시기와 질투가 숨어 있다. 마지막 발표를 마치고 부산에 내려와 곁에 있는 팀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사실 내 마음이 너무 작았다고. 경쟁이라 생각했고 너보다 잘하고 싶었다고. 그때의 도움 외면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론 더 자주 보고 함께 하자고. 술의 힘을 빌려 말했지만 솔직하고 진지하게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게 다시 연결된 지역의 팀들과 주위의 도움이 모여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되었다. 어느 상가의 지하 공간. ‘비밀기지’란 이름의 작은 청년 공간이.


이곳에서 각자의 활동을 하던 청년이 모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새로움을 모색했다. 누구는 댄스와 음악으로, 누구는 토론 모임으로, 누구는 청소년을 향한 프로그램으로 열망을 쏟아내고 변형되었다. 경쟁을 멈추고 단체의 커뮤니티가 시작되자 더 넒은 공간, 더 많은 사람이 이어지는 새로운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것이다. 너무 늦게 알았다. 서울을 오가며 그곳에 새로움과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가능성은 외면했던 주위에, 내가 포함하지 않았던 대상과 관계에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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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지금 몸을 담고 있는 인문공간 ‘생각하는 바다’에서도 다른 커뮤니티 운영자와의 만남을 쉬지 않고 이어가려 한다. 공간을 찾는 분들께 동료의 공간을 소개하는 것이 기쁜 일이 되었다. 나 혼자 이런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멋진 동료들과 함께 상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다른 기쁨을 준다. 이젠 안다. 나와 같은 꿈을 꾸고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곁에 많을수록 커뮤니티란 단어는 보다 단단해진다. 개인의 성장보다 동료와 함께 한 씬의 성장이 더 큰 열매를 남긴다. 만약 멘토의 따끔한 질문을 지금 다시 받는다면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다. 이제야 커뮤니티를, 나의 단어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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