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넘어 청년을 마주했고, 청년을 넘자 사회와 마주했다
장애를 주제로 익스, 이세와 이어간 내 두 번째 커뮤니티 WHY NOT은 부산 수영구에 있는 작은 수화교실에서 시작되었다. 수화를 배우며 청각장애인 익스와 허다를 만나 마지막 이세까지 뭉치게 된 것인데 재밌는 건 역시 이 수화교실에서 나의 세 번째 커뮤니티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수화 클래스마다 대강 4-5명의 수강생이 있었다. 대부분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교양과제의 일환으로 수화교실을 찾은 터라 기초반만 듣고 포기했는데 단 두 사람 나와 ‘혜란’만이 기초반에서 중급반으로 넘어갔다. 혜란은 배움에 대한 열의가 많은 친구였다. 학교에서 수화교실까지 1시간, 수화교실에서 다시 집까지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6개월 넘게 수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당장의 스펙에 도움이 되는 영역이지만 선한 마음과 강한 연민이 있던 ‘혜란’. 중급반 수업 마지막 날 교실에서 작은 뒷풀이를 가졌는데 혜란은 대학 졸업 전 의미 있는 프로그램에 동참해보고 싶다며 자기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물었다. 마침 그즈음 나의 주제는 장애에서 청년으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리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다보니 자연스레 장애의 틀을 벗어나 서로를 바라보며 사고하게 되었고, 휠체어 출입이 어려운 카페를 외우고 헷갈리던 수화마저 점차 능숙해지자 우리의 연결을 막던 장애를 넘어 청년 세대 모두에게 적용되는 강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장애는 학습과 노력으로 조금씩 극복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만나기 위해선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두리발도 돈이 있어야 예약할 수 있었고, 나와 익스는 돈이 있어야 주말 아르바이트를 당당히 포기할 수 있었다.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함께 뛰어 넘자 사회 속 나의 자리를 고민하고 불안한 미래에 흔들리는 그저 평범한 청년 세 사람이 놓여있었다. 비로소 같은 시선으로 무서운 사회와 두터운 현실의 장벽을 마주한 ‘청년 세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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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민은 ‘연결’과 ‘만남’으로 확장되었다. 우리의 연결을 위해 필요한 전제는 ‘소비’였다. 소비하지 않고서는 만날 수도 연결될 수도 없었다. 만나기 위해선 교통비와 식당에 갈 돈이 필요했고 노동을 하면 정작 시간이 맞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한 시간을 만나기 위해선 시급 이상의 돈이 있어야 했다. 커뮤니티를 통해 우리의 연결을 가로막던 신체적 장애와 사회적 장벽을 넘어섰던 것처럼 ‘돈’이 없어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소비하지 않고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우리는 보다 넓은 청년 커뮤니티를 지향했다. 목적은 단순했다. ‘관계의 포기가 당연시되지 않는 문화’. 증명하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청년 세대는 여전히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혜란과 여러 청년이 합류해 ‘청년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우린 모임 내 평등한 문화를 만들고 싶어 서로를 닉네임으로 불렀다. 나는 옥색바지, 혜란이는 샤브샤브, 다른 친구들도 각자 심신미약, 쿨방망이, 가시고기, 음소거란 닉네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비슷한 시기 지역의 다른 청년 커뮤니티는 어마어마한 회원 수를 자랑하기도 했지만 우린 계속해서 6명 남짓한 구조를 유지했다. 조직이 커지면 중력도 커지는 법이다. 청년을 위해 모인 커뮤니티지만 조금 방심하면 청년 개인이 소모되고 빨려들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각자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을 선’에서 나누는 마음이었고 가장 먼저 염려해야 할 건 조직에 빨려가지 않는 바로 옆의 청년이었다. 언제나 우리의 제1지향은 일상의 유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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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커뮤니티의 주제는 다가감과 적극적인 초대로 풀어졌다. 작은 한식당을 빌려 홀로 자취하는 청년을 초대한 적이 있다. 오랜 자취 경력으로 쌓인 나만의 레시피로 요리대결을 펼쳐보는 것이다. 주변의 도움과 후원도 받아 자취 청년들의 식료품을 상품으로 준비했고 혼자서 밥을 먹어야 했을 주말 저녁에 만나 괴랄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웃고 즐겼다. 일상의 같은 고민을 포착할수록 커뮤니티는 강하게 연결된다.
세대를 초월한 커뮤니티도 있었다. 5월 어느 봄 날, 우리들은 작은 정자에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고 있는 어르신들께 다가갔다. 주제는 ‘어르신과 청년의 자존심을 건 장기대결’. SNS에 모집 공지를 올렸다. 부산 민주공원의 장기 고수 어르신들과 자웅을 겨룰 청년은 모두 모이라는 짧은 문장이었다. 단순한 공지였음에도 부산 곳곳의 청년이 모여들었고 그날 우린 너른 잔디밭에 앉아 함께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하루 종일 장기 대결을 펼쳤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한 마디 말을 섞지 않던 세대가 작은 장기판을 함께 바라보며 훈수를 두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여기엔 훈수 두는 이의 교만도 훈수 받는 이의 반발심도 없었다. 그저 재밌게 불꽃 튀는 대결에 참여할 뿐이다.
마라톤, 피켓팅 등 형식을 바꾸어가며 새로운 활동을 이어갔고 주제와 활동 기록을 담아 매월 작은 잡지를 발간했다. 우리의 연결은 느슨했기에 무엇보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매개가 필요했다. 우리는 분명 다른 방식의 연결을 실험하고 있었다. 서로를 약하게 구속했고 세상과는 강하게 접속했다. 이처럼 커뮤니티도 다른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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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준을 정하고 개인을 강하게 당기는 커뮤니티보다 개인의 일상을 염려하고 유동적으로 변하는 커뮤니티가 옳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커뮤니티가 자칫 주객전도 되어 커뮤니티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쪽으로 발동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커뮤니티의 첫 대상은 내부에 속한 동료들이고 여기엔 동료가 홀로 해결해야 하는 일상에 대한 예민한 짐작이 항상 동반되어야 한다. 이 모든 감각은 커뮤니티에 대한 정의가 확실하다면 충분히 지켜낼 수 있는 영역이다.
2년 남짓 이어간 청년 커뮤니티의 이름은 바람이었고 슬로건은 ‘우리의 바람은 바람이 되어’였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바람’을 통해 커뮤니티가 공고한 세상의 편견과 어떻게 대립해야 하고 어떤 변화를 낳는지 확인했다. 장애를 넘어 청년을 마주했고 청년을 넘자 사회와 마주했다. 그렇게 나의 커뮤니티는 또 다음 주제로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