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선 삶의 담장을 허물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등굣길은 참 특별했는데 하나의 골목을 공유하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여자 고등학교와 특수학교가 있었다. 형형색색의 교복이 좁은 골목을 가득 채웠고 등교시간이 되면 같은 단계를 밟아갈 다른 나이의 학생들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신발주머니를 들던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하복과 동복을 바꿔 입던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나갈 수 있던 골목. 같은 공간을 공유하니 한 마디 말을 섞지 않아도 익숙한 누나, 익숙한 동생이 생겼는데 바로 옆 배화학교를 다니는 청각장애 학생들도 그랬다.
배화학교는 긴 학교 골목의 초입에 있었다. 배화학교 교문엔 부산에서 가장 빨리 피는 걸로 유명한 벚나무가 크게 있었는데 하교시간이 겹쳐 초등학교 때의 우리와 초등 학급인 그들이 나무 아래서 자주 만나곤 했다. 그리고 으레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그렇듯 매일 같이 싸웠고 매일 같이 울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우리 역시 어딘가 영악하고 무척 짓궂은 면이 있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싸움을 걸었고 우는 건 배화학교 학생이었다.
하교하는 학생들 뒤에서 안 들린다며 놀리는 친구도 있었고, 스쿨버스 창가에 앉은 아이들에게 손가락 욕을 해대며 지나가는 아이도 있었다. 마치 사회에서 마주할 차별을 예습이라도 하듯 비장애인 어린이와 장애인 어린이는 서로에게 적대적이었고 다른 존재를 무서워했다. 배화학교 학생들은 늘 목소리가 컸고 발화도 구체적인 문장의 형태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엔 그게 공포였다. 닮고 싶지 않고 나는 다르고 싶다는 마음이 노골적인 가해, 놀림 혹은 배제로 이어졌던 것이다. 분명 배화학교 학생들도 무리를 지어 달려드는 우리가 무척 무서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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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까지 내리 9년을 담장 하나 두고 지낸 우리들이다. 학업 스트레스로 적대와 냉소의 마음이 식어가고 치고받고 싸웠던 시간이 아련해 질쯤 철이 든 것인지 정이 든 것인지 그들의 얼굴이 익숙해졌다. 마주친 눈빛에서 일종의 반가움 혹은 연결의 느낌이 들었지만 우린 신체적 장애를 마주하며 대화하는 법을 몰라 그대로 지나쳐야만 했다. 두 학교 모두 다름을 마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나의 골목을 두고 함께 등교하고 함께 하교했지만 제대로 대화하는 방법을 몰라 각자의 담장만 머물러야 했다.
넘어서지 못한 경계가 내내 남았다. 여전히 나의 동네는 그들의 동네였고 버스 탈 때나 짚 앞 슈퍼를 갈 때에 매일 서로의 존재를 마주했다. 어릴 때 허물지 못한 담장이 여전히 내 삶을 양분하는 느낌. 마주치고도 외면해야만 했던 지난 기억이 싫어 서둘러 수화반에 등록했다. 열심히 배운 수화로 나의 이름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이 짧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아 그토록 오래 갈라졌던 만남이라니.
허탈한 마음만큼 앞으론 보다 밀접한 관계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물과 기름처럼 좁을 골목을 지나면서도 섞이지 못했던 지난 기억을 벗어나, 장애를 넘어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도전하고 공동의 이야기를 만들어 같은 골목을 걷고 있을 동생들에게 다른 사례를 들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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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할 동료를 찾고 싶어 부산의 여러 복지관과 지역 장애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명확한 계획이 없던 나는 경계의 대상이었고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보다 나의 대한 설명을 더 많이 해야만 했다. 의지만으로 마주한 의심을 모두 돌파하기 힘들었을 때 중급반으로 올라간 수화교실에서 청각장애인 익스를 만났다. 장애 정도가 그리 높지 않던 익스는 청각장애 수화통역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기초를 다지기 위해 다시 중급반을 신청한 터였다.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익스와 만나 함께 수화를 공부하고 밥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서툴게 서로의 언어와 속도를 학습했다.
중급반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자 익스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소한 도전을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영상을 찍어보면 어떨까?” 지금은 유튜버라는 멋진 단어가 있지만 그땐 UCC로 설명되던 컨텐츠였다. 자신의 얼굴이 유튜브에 공개되는 것이라 거부당할 걸 예상하고 내심 긴장했지만 익스는 너무나 흔쾌히 “같이 해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익스와 나는 3개월 간 ‘함께 산책하기’, ‘다른 장애 체험해보기’, ‘함께 요가하기’, ‘함께 피시방에서 게임하기’와 같이 20대의 친구들이 으레 할 법한 아주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을 실험해 나갔다. 목적은 서로의 일상을 섞어내는 것이다. 함께 골목을 걷고, 함께 밥을 먹고, 외면하지 않고 어울려 지내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목적이었다.
이후 우리의 영상을 보고 수화센터에서 일하던 청각장애인 허다와 그의 남자친구 이세가 합류했다. 허다와 이세는 서로 다른 장애특성이지만 각자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을 더해 예쁘게 만나고 있던 커플이었다. 이세는 지체장애인이었다. 이세가 합류하며 우리의 도전은 더 과감해졌고 단단해졌다. 지체장애인의 일상은 매일 더 큰 도전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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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야 할 작은 턱은 세상에 너무 많았고 닿을 수 있는 지역의 범위도 제한되었다, 영상 컨텐츠를 위한 회의 장소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을 고려해 선택해야 했다. 이세와 나는 함께 농구장을 찾기도 하고, 바다가 보고 싶다는 이세의 말을 따라 해운대를 가기도 하고, 지난 추억을 쫓아 이세의 출신 초등학교를 가보기도 했다. 가장 좋았던 건 나와 이세 그리고 익스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준비한 화이트데이 이벤트였다. 6개월이란 시간을 내내 섞이며 어느새 서로의 사랑을 함께 응원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하철 의자에 누워 한 시간 넘게 두리발을 기다려보기도 하고 돈이 없어 1500원짜리 밥버거 하나를 힘겹게 나눠먹기도 했다.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 나는 익숙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만지며 매일 밤 겨우겨우 영상을 편집해야 했고, 이세는 매번 비싼 돈을 들여 두리발을 탔으며, 익스는 생계를 위해 바쁜 와중에도 퇴근 후 꿀맛 같은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마땅한 보상이 약속된 프로젝트가 아니었지만 우린 각자의 삶에 놓여진 담장을 뛰어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냐며 웃었다.
우리의 질문은 하나였다. WHY NOT? 왜 안 되냐는 물음. 나와 익스, 그리고 이세의 사회엔 보이지 않는 담장이 쳐져있다. 힘주어 담장을 허물지 않았다면 우린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희망과 근거가 되는 작은 커뮤니티도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처럼 우리의 삶도 단조롭고 좁은 길로 이어진다. 골목이 지하철이 되고 회사가 되고 사회가 될 뿐 여전히 각자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것은 좁은 담장 안이다. 나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선 삶의 담장을 허물어야 한다. 그 담장 너머에 새로운 동료와 만들어 갈 새로운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