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엔 유령이 산다
2015년은 유독 여름이 길었다. 9월로 넘어가는 달력이 무색하게 더위는 계속 이어졌고, 낮 시간 동안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는 어디에도 가지 않은 채 커다란 화물차가 지나가는 공단 도로 위에 그대로 남았다. 덕분에 낡은 기숙사 건물에서 생활하던 나는 자주 밤잠을 설쳤다.
선풍기로 감당하기 힘든 더위도 문제였지만, 열아홉의 나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고민이 많았다. 불 꺼진 방에 누워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가야 했나? 어쩌면 마이스터고 진학 자체가 문제였던 게 아닐까? 고민은 뭉게뭉게 피어나 걱정이 되었고, 걱정은 금세 불안으로 변해 마음을 무겁게 적셨다. 그건 ‘현장실습생’으로 회사에 취업한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답답함을 참을 수 없는 날에는 함께 입사한 K와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법적으로 미성년자였지만 반바지에 작업복을 걸치고 나가면 딱히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해가 지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도는 공업단지에 미성년자가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는 다 돈 번다고 어른이라던데, 이럴 때는 좀 우습지 않냐? K는 맥주가 들어 있는 비닐을 들어 올렸다. 온도 차 때문인지 편의점 상표가 적힌 부분 위로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우습지,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 못 하는 게 더. 어른이지만 술 담배는 안 돼! 어른은 아니잖아, 그냥 일하는 거지. 그러면 그냥 일하는 애라고 하던가. 그러게, 이상하네.
K와 나는 일렬로 늘어선 가로등 불빛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직 어른이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학생으로 남아있을 수도 없었던 이상한 여름이었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누가 차갑고, 누가 뜨거운 걸까. 이 여름이 지나가면 모든 게 자연스러워지기를 바라며 우리는 맥주캔을 비웠다.
*
하루는 옆방에서 지내는 26살 선배가 방으로 찾아왔다. 여전히 더운 날이었고, 가끔씩 맥주를 마시던 밤이었다. 와, 니들 벌써 술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가? 너무 더워서 잠이 안 와요. 가위눌리는 건 아니고? 자다가 더워서 깬 적은 있어요. 조심해라 우리 기숙사에 유령 산다이가. 유령이요? K와 나는 아는 거 좀 있냐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웬 유령?
와, 얘네 아무것도 모르네. 선배는 남이 들으면 곤란한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조용하고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 기숙사에는 유령이 산다고. 새벽에 갑자기 문이 열리거나, 사람이 없어도 복도의 조명이 켜지거나,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하는, 사소하지만 원인을 밝히기 어려운 일들이 기숙사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내가 신입 때 같이 들어온 친구가 있었는데 걔는 진짜 봤다는 거 아니가. 선배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새벽에 화장실 간다고 복도에 나왔는데, 작업복 입은 키 큰 사람이 제일 끝에 서 있더란다. 입사하고 얼마 안 돼서 누가 누군지 모르니까 그냥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볼일 보고 왔는데, 며칠 지나고 보니까 기숙사는커녕 회사 전체를 봐도 그런 사람 없었단 거 아니가.
와, 소름. K는 맥주캔을 놓고 양팔을 문질렀다. 잠깐이지만 더위는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나도 흥미롭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분은 어떻게 됐어요? 바로 회사 그만뒀어요? 그만두긴, 산업기능요원 3년 잘 채우고 관뒀지. 지금은 요리하고 싶다고 식당에서 일한다 이가. 뭐에요 그게. 우리는 김샌다고 투덜거리며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났는지 내용물이 미지근해져 있었다.
하긴 유령이라고 나쁘겠어요? 그냥 거기 있는 거지. K는 그렇게 말하고 선배와 담배를 피러 나갔다. 나는 혼자 방 안에 누워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되돌려보았다. 그리고 ‘그냥 거기 있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
기숙사에 유령이 산다는 선배의 말은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새벽에 불이 켜지거나 이상한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복도 너머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떠올렸다. 정말로 무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장난으로라도 조심하라던 선배의 말과는 달리, 그 존재가 우리에게 해를 끼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다치게 한 적도, 아프게 하거나 홀리게 한 적도 없었다. 유령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나와는 다른 영역에 속해있는 무언가로 느껴졌다. 마치 TV를 통해서나 존재를 확인하는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 같았다. 원래부터 ‘그냥 거기 있을’ 뿐이었다.
우리도 그냥 거기 있었다. 부산 강서구 녹산산업중로 22번지에. 5분만 걸어가면 창원시로 갈 수 있는 지역의 가장 끝자락에. 침대와 옷장 말고는 다른 가구가 없는,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시설이라 내부 구조가 사각형으로 딱 떨어지는, 넓다 못해 휑한 느낌마저 드는 방에 K와 내가 있었다.
야 이거 봐봐. 바닥에 드러누워 열을 식히고 있던 내게 K가 핸드폰을 건넸다. 화면에는 젊은 남녀가 웃으며 팔을 치켜들고 있었다. 해외여행을 지원해준다는 내용의 포스터였다. 스무 살 되면 이런 거나 신청해볼까. 안 될걸. 회사는 연차 쓰면 어떻게 되지 않겠나? 안 된다니까. 아 왜 안 되는데! 나는 화면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K에게 말해주어야 하는지 망설였다.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면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변할 것만 같았다.
대학생이잖아 그거. 나는 아무렇지 않는 듯이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선풍기 바람에 그 말이 금세 사라져버리길 바라면서. 미안하다 못 봤네. K는 짧게 대답하고 다시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사과를 왜 하냐. 그러게, 이상하네. 어색한 침묵이 싫었던 우리는 일찍 불을 끄고 잘 준비를 했다.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걸 알지 못해 괴로운 여름이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더 나아갈 길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어른’이란 단어가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처럼 그 자리에 남았고, 우리는 기숙사 방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발버둥 치지 않으면 온 몸이 희미해져버릴 것만 같았다.
열어둔 창문으로 공장의 기계소리가 들렸다. 풀벌레 소리도, 희미한 가로등 불빛도 함께 방안으로 스며들어왔다.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냥 거기 있다’는 게 과연 가능한 건지. 누군가가 ‘그냥’ 거기 있을 수 있는 건지. 그곳에 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연이, 사건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삶과 죽음이 필요한 건지. 그러면서 기숙사에 산다는 유령에 대해 생각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처럼 열아홉 살부터 일을 시작했을까.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돈을 벌어야 했을까. 왜 돈을 벌어야 했을까.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했을까. 불안했을까. 서러웠을까. 퇴근 후에는 뭘 했을까. 공부를 했을까. 힘들진 않았을까. 뭘 좋아했을까. 가족은, 친구는, 애인은 있었을까. 그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새벽 복도 끝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당신은 안녕한지, 나는 정말로 물어보고 싶었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허태준)는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