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게 된다

미래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만을 꺾어 너를 응원하고 싶었다

by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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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국어 시간,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워낙 유명한 시인 데다 여러 번 리메이크 된 가수 ‘마야’의 노래도 있어서 그런지, 수업을 듣는 모두가 평소보다 편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쩌면 젊고 아름다운 국어 선생님의 낭독이 마냥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봄날의 햇살이 창가의 경계를 따라 의자에 걸어둔 작업복으로 스며들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떠나는 님을 위해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화자의 마음. 절절한 이별의 시구. 선생님은 교과서에 나오는 해석을 설명해준 뒤에 시를 읽고 다른 감상이 떠오른다면 발표해보자고 했다. 다른 감상이라. 나는 <진달래꽃>을 한 번 훑어보고, 교과서 구석 자리에 짧은 문장을 적었다. 마침표를 찍자 톡, 하고, 샤프심이 부서졌다.


*


중학교에 다니던 무렵 정부의 특성화고 지원 정책에 따라 몇몇 학교가 ‘마이스터 고등학교’로 지정됐다. 거기 가면 돈도 안 들고 나중에 취업도 잘 된다. 괜히 대학 가봐야 학자금 대출이랑 졸업장밖에 남는 게 없다. 사회에선 기술 있는 사람이 대우받는다. 막연히 그런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이 있었고, 대학 입시가 부담스러웠던 친구들 중 몇몇은 진지하게 입학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취업이니 대학이니 하는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졌다. ‘기계’나 ‘공업’, ‘해사’나 ‘자동차’ 같은 단어가 주는 무게감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그 학교에서는 뭘 배우는 걸까? 어떤 생활이 있고, 어떤 미래가 있는 걸까?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다른 종류의 삶을 상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밤새도록 책을 읽고 혼자 습작 소설을 쓰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문예창작과가 있는 예술 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삼았다. 진지하게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가족들은 내가 진짜 예고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덕분에 성적도 오르니 지켜보자는 눈치였다.

입학 성적을 맞추기 위해 내신을 관리하고, 평소처럼 습작을 해도 주제와 시간을 정해두고 쓰는 연습을 했다. 여름방학에는 예비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백일장 참여를 위해 혼자서 야간버스에 올랐다.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하던 목표였는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새벽 4시에 도착한 정류장은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았다. 커다란 건물들과 싸늘한 새벽 공기에 잠이 덜 깬 몸이 떨렸다.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두려움은 기대감의 다른 얼굴이었다. 낯선 도시는 쓸쓸해 보여도, 한편으로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 반짝임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어딘가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날 내가 쓴 글은 수상자 명단에 들었다. 교무실에서 함께 결과를 확인한 담임선생님은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하지만 몇 달 뒤 내가 입학 원서를 쓴 곳은 예술 고등학교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작은형이 대학에 가야 해서 두 사람 다 학비를 대줄 수가 없데요. 예술 고등학교는 학비가 비싸니까, 그냥 돈 벌러 가려고요.


그렇게 나는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예술 고등학교에 가려고 올려둔 성적 덕분에 서류전형을 가볍게 통과할 수 있었다. 면접에서는 공고에 다니던 동네 형이 떠들던 이야기를 그대로 읊었다. 최종 발표가 있는 날, 아이러니하게도 백일장 상장과 문집이 택배로 도착했다. 나는 컴퓨터 화면의 ‘합격을 축하합니다’와 백일장 상장을 긴 시간을 두고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치 거기에 무슨 의미라도 있는 것처럼.


학교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적성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나에게는 제법 기계 다루는 솜씨가 있었다. 기숙사 생활도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집보다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곳에서 나는 자동화 연구 동아리에 들었고, 여러 자격증 취득하고, 시험 기간엔 독서실에서 친구들과 새벽까지 공부했다. 나름의 목표와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가끔, 실습 도중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굉장히 낯선 기분들과 마주하고는 했다. 작업복을 입은 친구들. 공장을 닮은 실습실. 때로는 날카롭고 크게 울리는 소리.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교과서 구석 자리에 적은 문장은 과거의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쳐왔다. 예술 고등학교를 가고 싶던 그 아이는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왜 여기 있는 거냐고.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여기 있는 거냐고, 나를 질타하며 타박할까. 꿈꾸던 모습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 자신을 차마 받아드리지 못해 고개를 돌려버릴까.


그래도 어쩔 수 없겠지. 나는 너에게 사과해야만 하겠지. 봄날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진달래꽃>의 시구는 과거의 ‘나’에게 바치는 사죄의 말이었다. 부디 나를 이해해주기를. 부디 나를 역겨워하지 말아 주기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전할 수 없는 과거에 전하는 말이었다.


*


원하던 미래에 도착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조금 더 떳떳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다른 이유와 다른 사정으로 인해 괴로웠을 것이다. 노력은 보답받지 못하고, 때로는 억울함에 지쳐 더 큰 후회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지나왔던 갈림길은 아직 너에게 열리지 않았다.


너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반짝임이 남아있는, 미래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만을 꺾어 너를 응원하고 싶었다. 너는 분명 내가 된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고, 기계나 전자 같은 과목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시를 보면 가슴이 뛰고, 공책 빈자리에 수없이 많은 문장을 적어둘 것이다. 걸어가는 너의 뒷모습이 낯설어 보였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고맙다고 외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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