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을 읽고

by 호밀밭
메인 이미지.jpg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17p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2018년 10월, 책이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의 일이었다. <쓰기의 말들>을 주제로 부산에 강연을 오셨던 은유 작가님에게 한 참여자가 질문을 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시냐고. 은유 작가님은 담담하게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는 현장실습생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대답했다.


강연 스텝으로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커다란 감정이 가슴을 두드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온몸이 그대로 굳어버려서, 강연이 끝났음에도 한참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생각은 여러 갈래로 뻗어 쉽사리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짙은 색을 드리우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감정. 그건 아마 부끄러움이었다고 생각한다.


*


나는 현장실습생이었다. 특성화고등학교 중 국가 지원이 많았던 마이스터고에서 공부했고, 열아홉 살부터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다음 해에 바로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할 수 있었던 덕분에 3년 7개월 동안 같은 회사에 근무하며 기계 설비를 고쳤다. 퇴근 후에는 기숙사 방에서 새벽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하루에 10시간씩 이어지는 노동이 힘들기는 했지만 기댈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회사에 다니며 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 매달 들어오는 월급.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독립적인 감각. 홀로 글을 쓰는 긴 새벽의 시간. 완벽하지 않아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많다고 믿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매번 지금 하는 일에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닌지 의심해야만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도 없었다. 학교에서 항상 긍정적으로 맡은 일을 잘 해내던 친구는, 연일 이어지는 야근과 늘어나는 업무 강도 때문에 괴로워했다. 나는 그에게 이직을 권했다. 그런 회사는 빨리 나와 버려야 한다고. 너는 훨씬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한 직후였던 그는 한숨을 쉬며 조금 더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


언론에서 현장실습생과 산업기능요원,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이 대서특필 될 때마다 나는 항상 당사자로 그 사건을 바라봤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슬프고, 아프고, 억울했다. 하지만 차마 무언가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빨리 잊어버리려 노력했다. 그 감정을 간직하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내가 사회적 약자라고, 내 친구가 차별받고 있다고, 우리는 억울하고 위험하고 불공평하다고. 그걸 인정하면 도저히 내일 아침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게는 학교에서부터 함께 시간을 보냈던 우리 모두의 삶이 불행하다고 인정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고개를 돌리고 있는 사이 가장 아프고, 슬프고, 억울하신 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선한 일을 행하지 않음’에 대해 반성하며 용기를 냈다. 은유 작가님은 ‘겸손한 목격자’의 마음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렇게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 세상에 나왔다.

8971999632_1.jpg
애가 기숙사에서 오는 토요일엔 제 주말 스케줄은 ‘올 스톱’이었죠. 그 1박 2일이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니까요. 맛난 것 해서 먹고, 오자마자 옷 빨아서 널고 말려서 월요일에 보내야 하니까요. 주말 아니면 아들이랑 밥 먹을 기회가 없어요. 그래봤자 두 번 정도 먹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동준이가 기숙사에서 오는 그 시간이 제일 행복했어요. -67p 강석경(김동준 어머니)
회사는 민호를 실습생이 아니라 직원처럼 대했대요. 직원한테 최저임금 주나요? 학생을 데려다 일주일 교육하고 베테랑 직원이 할 일을 시켰어요. 공장장한테 당신은 사기꾼이다, 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그랬어요. 듣고만 있어요. 아무 대답도 안 해요. -128p 이상영(이민호 아버지)


이번 여름 내내,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가 아팠다. 학교에서 단체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와서 가족들과 밥을 먹고, 자격증 공부를 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대학생을 부러워하던 그 아이는, 알지 못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철야를 밥 먹듯이 하던 친구였고, 이사에게 뺨을 맞았던 후배였고, 회사 기숙사에서 퇴사를 고민하던 선배였다.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이었다.


그들을 혼자 두지 말아야 했는데, 외롭게 두지 말아야 했는데……. 나는 왜 그들을 손을 잡아주지 못했을까. 진심으로 위로해주지 못했을까. 왜 그리도 무책임한 말들을 쏟아냈던 걸까. 왜 막막한 고립감 속에 그들을 내버려두었을까. 왜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자 마음먹지 않았을까. 자신의 아픔을 감추기 위해 그들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을까. 그 날 홀로 남은 강연장에서처럼, 나는 모든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누군가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했을 때, 어쩌면 작가는 아무것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일은 ‘있는 그대로’의 무언가를 전하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긴 시간을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잠 못 드는 밤을 넘어서야, 이제야 겨우 무언가를 쓰려고 한다. 나는 그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는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