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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Jul 16. 2020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미루고 미루던 진로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대학교 3학년, 이제 미루고 미루던 진로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렇게 꿈꾸던 선생님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할 것인지, 취직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반면 3학년이 지나면 더 놀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그렇게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아일랜드 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런. 눈 감았다 뜨니 집으로 돌아갈 시간. 시간은 역시나 나보다 한발 빨랐다. 아일랜드에서의 푸르른 자연과 우중충한 날씨에 녹아든 지 10개월이 흘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마침내 마지막 보루였던 산티아고로 향했다.


   30일 동안 걸으면서 생각하고, 결정하자.      


   아일랜드에 가서도 하지 않았던 후회를 프랑스 행 비행기에 타서도, 출발지였던 생장 행 수면기차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계속 후회했다. 혹시나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을지,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 오만가지 걱정을 했다. 생장역에 도착해서 생장으로 들어가기까지 몇몇 동양인들이 있었다. 특히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000색 등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들을 만났다. 


   ‘한국인이세요?’ 


   길의 첫 시작점에서,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만났다. 그렇게 30일 동안 함께 걸었던 그녀들. 내 나이보다 몇 년, 몇십 년을 먼저 살아낸 그들과 함께 걸었던 시간이, 그녀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제일 처음으로 만났던 그녀는 내게 내가 이 길을 걸으면서 생각해야 할 것들을 던져주고 떠났다.       


   스물넷.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이었던 S 언니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히말라야 트레킹 퀘스트를 깨고, 다음 미션으로 카미노 길에 올랐다고 했다. 1일, 2일, 3일까지 함께 걸으면서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기업빨이었는지, 10년간 몸담았던 대기업을 때려치워서인지, 내가 본 S 언니의 모습은 당차고 멋있었다. 나도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오랜 꿈이지만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교사를 준비할 것인지, 어디든 빨리 취직해서 내 몫을 다 해야 할지 고민하는 조무래기인 나의 질문에 언니의 대답은 아주 간단 명쾌했다. 


   “나도 대학교 다닐 때는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어. 근데 집안 사정상 바로 취업을 해야 했고 운 좋게 빨리 대기업에 들어갔지. 대기업이 일을 많이 시키는 만큼 돈도 많이 줘. 10년 동안 일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고. 번 돈으로 부모님이 필요하시다는 티비며, 냉장고며 다 사드렸고. 그런데 난 10년 동안 행복하지 않았어. 그런데 딱 봐도 행복해하지 않은 얼굴로 출근한 딸이 선물을 받으시는 부모님도 기뻐하셨을까? 결국 우리는 평생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내가 행복한 게 최고고, 그게 부모님의 행복 아닐까?" 


   돈은 많이 벌지만 매일 죽을상으로 출근하는 딸이 벌어온 돈이, 선물들이 무슨 낙이란 말인가. 돈을 빨리 벌어서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마음껏 베풀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산티아고 길 위의 시작점에서 던져진 질문들이었다. 


   S 언니는 대기업에서 일도 잘했고,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왔다고 했다. 언니는 카미노를 걸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다고 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성당이라는 목적지를 향해서 누구보다 빨리 진취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함께 시작한 사람 중에서 단연 1등이었다. 3일 차까지는 열심히 쫓아갔지만, 더 이상 언니의 빠른 걸음에 발맞출 수 없어 언니를 먼저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마음껏 생각하고 결정하고 싶어서 오른 카미노 길이었다. 막상 오르니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깜깜했다. 그저 30일을 보내고 가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이 길 위에서 만난 첫 번째 인연으로 내가 해야 할 생각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 부모님도 친구도 아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어떤 결정이 내가 제일 행복해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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