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음악 만드는 클래스 열어보고 싶어

커뮤니티의 동력은 언제나 기획자의 기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by 호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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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인지 1월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카페엔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있었고 우린 각자 목도리를 매고 있었으니 대강 겨울이라 짐작해본다. 시민사회 영역의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던 형이 있다. 부산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내리 활동하던 형이었는데 내게 부산에서 진행하는 작은 그룹 인터뷰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건넸다.


"너 동준이 맞지?"

"어?"


분명 익숙한 얼굴. 상대의 얼굴에 서운함이 스치기 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달라진 얼굴에서 발견한 예전의 앳된 얼굴.


"야 오랜만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만난 중학교 동창이었다. 중학교 땐 영 활발하지 못한 성격이라 서로 많은 대화를 해보지 못했는데 활동이라 불리는 이 모호한 영역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서로 다르게 살아온 지난 시간을 짐작하는 질문을 마구 던져대었다. 친구는 부산에서 열심히 취업 준비하다 서울에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 올라가게 되었고 그렇게 공공영역의 언저리에서 꿋꿋이 2년을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부산에서 다니던 대학을 중간에 그만두고 다양한 주제에 따라 부유하며 사회운동과 사회활동의 경계에 머물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더 이상 사회를 주제로 한 운동과 활동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터였다. 그래서 그날 진행했던 그룹 인터뷰도 냉소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는데 마침 퇴사를 고민하던 친구에게 그런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몸도 많이 지치고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다던 친구. 친구의 별명은 ‘눈썹’이었다.


눈썹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건 어느 여름의 시작이었다. 회사를 정리하고 아예 내가 머물고 있는 부산으로 다시 내려왔다고 했다. 그때 나는 지역의 선배들과 함께 광안리에서 문화공간 ‘생각하는 바다'를 막 시작했던 때였다. 기쁘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물음에 눈썹은 대뜸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티스트로서 음악을 하며 살고 싶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음악을 만드는 클래스도 열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그럼 여기서 해보자“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기획이라든가 성공 가능성을 따지고 건넸던 말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서, 또 같은 영역에서 고군분투했던 동료로서 새롭게 시작할 부산에서의 이야기에 내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


그날의 짧은 한마디 이후 우린 1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사이 함께 고민하던 커뮤니티가 2기까지 진행되며 개인의 역량을 올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16개의 자작곡이 만들어지는 성공적인 커뮤니티로 자리 잡기도 했다.


나 역시 ‘음악’은 이전까지 전혀 해본 적 없는 장르였지만 오래전 만났던 인연과 새롭게 일을 꾸며보고 싶은 마음이 모든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커뮤니티 매니저란 직함을 달고 시작한 지 6개월. 당시 내겐 서로 잘 아는 사람과 만들어간 커뮤니티 보다 서로의 차이를 발견해가며 커뮤니티를 단단히 일궈내는 경험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다른 취향과 삶을 살아온 사람과는 어느 정도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스스로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일정을 정하고 하나씩 과업을 해나갈 때 눈썹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클래스를 진행해도 될까? 부산에 나보다 더 잘하는 분들도 많고. 내가 싱어송라이터라 불려도 되는지 자신도 없고.” 언제나 개인의 가장 솔직한 마음은 불안에서 드러난다. 눈썹의 불안은 프로그램의 성공과 신청한 참가자의 수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니었다.


내가 준비하는 프로그램이 적합할지에 대한 고민과 수업으로서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이런 고민에서 시작한 불안은 당장의 떨림이 아무리 거세도 개인이 자신의 커뮤니티를 얼마나 진지하게 대하느냐로 알 수 있는 귀한 척도가 되었다. 재미, 흥미. 잘하고 싶다는 욕심. 시작의 단계에선 능숙한 경험보다 이런 원초적인 감정이 서로를 더욱 거세게 추동하는 동력이 된다. 성공에 대한 개인의 강한 욕망보다 말이다.


*


눈썹과 나는 매주 회의와 디자인,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다듬어가며 우리만의 자작곡 워크숍을 준비했다. 우리는 마치 앨범을 만들 듯 광안리 바다로 나가 포스터 사진을 찍고 A컷, B컷을 나눠 메인 이미지와 카드뉴스 이미지를 선별하고, 홍보문구를 다듬고 다듬으며 우리의 첫 클래스 참가자를 모집했다.


눈썹과 나는 많은 것이 달랐다. 내가 써내는 글의 온도가 눈썹의 취향과 맞지 않아 가벼운 놀림을 받기도 했고 특히 참가비에서 의견이 자주 갈렸다. 해본 적 없는 프로그램인 데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참가할지 고민이 컸던 눈썹이지만 나는 시작인 만큼 적정한 가격을 책정해야만 했고 이 부분은 양보할 수 없었다. 시작의 단계에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건 ‘가능성’이다.


생계를 해결할 정도의 큰 수입은 아니더라도 눈썹 스스로가 커뮤니티를 통해 적절한 활동비를 지급받을 수 있는 것. 이 움직임을 통해 앞으로 무언가를 더 크게 꿈꿔볼 수 있겠다는 나름의 가능성이 주어지는 게 내겐 가장 중요했다. 커뮤니티의 동력은 언제나 기획자의 기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움직임을 열심히 이어가면 내 삶의 문제도 해결 가능하겠다는 기대, 내가 더 열심히 준비하면 더 많은 사람과 더 재밌는 작업을 많이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 이런 기대가 커뮤니티를 멈추지 않고 달리게 만든다.


나는 랩 스킬보다 가사가 아름다운 랩퍼를 좋아하는데 특히 그 중 ‘팔로알토’의 가사를 가장 좋아한다. 매일 격언처럼 되뇌는 그의 가사다.

‘흥미와 돈 둘 중 하나는 충족돼야지’ - 팔로알토 <switch> 중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욕심이 많다. 나의 흥미가 오롯이 투영된 커뮤니티이면서 돈에 대한 가능성도 충족되는 일. 우리는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한 번에 두 개의 욕심을 쟁취해야 했다. 눈썹이와 진행했던 자작곡 워크숍 메마뮤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의 만남은 아주 우연히 이루어졌지만 우리의 커뮤니티는 이렇게 튼튼히 다듬어가며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설거지를 해야 한다>(우동준)는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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