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카페에서는
아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카페에서 작업할 때 아이를 자주 데리고 다녔다. 현관을 나서기 전 내가 귀찮아도 반드시 했던 일은 아이 준비물을 한가득 챙기는 것이었다. A4 용지나 두꺼운 과자 상자 따위를 오린 종이부터 각종 펜, 색연필, 지우개, 가위, 스카치테이프, 스테이플러, 풀(가끔 목공풀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읽을 책 몇 권 등등을 챙기고 나면 내 짐보다 묵직해질 때도 있지만, 그 덕분에 아이가 스마트폰 없이도 카페에서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꿋꿋하게 욱여 넣곤 했다.
그렇게 몇 년간 습관을 쌓아온 아이는 이제 "카페 갈까?" 하면 알아서 척척 자기 짐을 싼다. 카페에 도착해선 테이블 위에 차곡차곡 세팅도 잘한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나서야 마우스를 가져오지 않았단 걸 깨닫고 절망에 빠진 엄마 옆에서. (나는 그럴 때 이참에 집까지 달리기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스스로를 달래곤 한다.)
아이가 일곱 살 때 떠난 두 달여의 북유럽 여행에서도 우리 가족은 카페를 자주 드나들었다. 북유럽은 아이와 같이 가기 좋은 카페가 정말 많다. 우선 인구밀도가 적어서 붐비지 않는 점이 좋고, 너무 달지 않은 착즙주스나 빵, 디저트류도 다양하지만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건강식도 제법 잘 준비돼 있기 때문에 식당보다는 카페를 더 즐겨 찾았다.
북유럽에서 만난 수많은 멋진 카페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 중 하나는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스페셜티 커피점 ‘굿 라이프 커피’였다. 그때 헬싱키 날씨는 시월 초였는데도 겨울처럼 추워서 우리는 종종 카페로 피신해서 몇 시간씩 쉬었다 가곤 했는데, 우리는 이 카페에 앉아 그 해 첫눈을 맞이했다.
커피를 사랑하는 북유럽을 여행하며 유독 커피에 관한 특별한 추억이 많이 쌓인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고난 후에 커피를 끊었었는데, 북유럽 여행을 통해 다시 커피와 친구가 됐다.(커피를 다시 즐기게 된 재미난 에피소드는 책 속에 담았다)
하루에 한 잔, 집에서 직접 신선한 원두를 갈아넣은 드립 커피도 좋고,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도 좋다. 사랑하는 아이와 커피가 함께하는 시간, 내 굿 라이프의 한 조각은 카페에서 만들어진다.
굿 커피, 굿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