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덕'이 행복해지는 나라들
책을 좋아하고 만드는 사람으로서 북유럽 여행 중 도서관을 어슬렁대는 것 이상으로 자주 찾은 곳이 서점이었다. 독서 강국이자, 나무의 나라들인 북유럽 서점에는 질과 양 모든 면에서 뛰어난 책이 넘쳐난다.
스웨덴의 교보문구라고 할 수 있는 대형 서점 체인이다. 스톡홀름을 비롯한 대도시에 지점을 두고 있다. 복잡한 시내를 걷다가 아카데미북한델을 발견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넓고 쾌적하고, 북큐레이션이 잘돼 있어서 언제 어느 때든 기분이 좋아지는 곳. 아이가 그림을 그리며 놀 수 있도록 테이블과 종이, 색칠 도구가 갖춰져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참고로 서점 이름에서 ‘bok’은 스웨덴어로 책, ‘handeln’은 상점으로, 우리말로 풀이하면 ‘아카데미 서점’이다. 이전 연재글인 핀란드인이 행복한 이유에서도 썼지만 북유럽에서는 상호들이 대개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한 편인데, 대형 체인이어도 다르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이 서점 이름 역시 문자 그대로 ‘SF서점’이다. 스타워즈나 해리포터 등 SF 소설과 티셔츠 같은 관련 굿즈, 게임, 피규어 등이 함께 진열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오프라인 매장을 이제 잘 보기 어렵지만, 스웨덴에서는 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 모두 가장 번화한 중심가에 지점을 두고 있어서 아이랑 구경 삼아 몇 번 들렀다.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대형 서점이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 등장한 곳이자, 핀란드 국민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가 디자인 곳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곳이다. 역시나 문자 그대로 ‘아카데미 서점’이라는 심심한 이름을 가졌지만, 내부는 버라이어티하다. 채광과 디자인을 한꺼번에 잡은 유리 천장 아래 탁 트인 내부가 서점이라기보다는 대형 박물관이나 명품 쇼핑몰처럼 아름답다. 헬싱키의 대표 관광 명소이기 때문에 핀란드를 소개하는 책이 많아서 좋았다.
스웨덴의 교보문고가 아카데미북한델이라면 핀란드의 교보문고는 수오말라이넨이다. 앞서 소개한 아카데미들보다 색다른 느낌의 서점명에 혹시 실망할지 모르지만 충분히 기대해도 좋다. ‘수오말라이넨’은 ‘핀란드인’ 혹은 ‘핀란드식’이라는 뜻. 즉, ‘핀란드 서점’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수오말라이넨은 교보문고 핫트랙스처럼 한쪽에 미술용품이나 팬시 문구류가 다양하게 갖춰진 것이 장점이고, 무료 포장대가 설치돼 있어서 누구든지 선물 포장을 할 수 있는 게 좋아서 북유럽 서점 중에서 아이랑 가장 많이 들른 곳이다. 덕분에 북유럽 여행 에세이 <너만큼 다정한 북유럽>에도 수오말라이넨 서점에서의 추억담이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서점 체인이다. ‘책과 아이디어’라는 굉장히 창의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역시 코펜하겐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 지점을 두고 있는데, 위에 소개한 서점들처럼 규모가 크거나 하진 않았고, 문구 잡화류보다는 책에 집중한 서점이다(혹시 어딘가에 대형 매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덴마크의 비싼 물가만큼 책값도 비싸지만, 그 대신 최대 90%까지 할인하는 파격적인 매대들이 있어서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에스토니아의 대표적인 서점 체인이다. ‘라흐바 라마’라는 서점명은 ‘인민(혹은 시민) 서점’이라는 뜻인데, 인테리어가 예쁘고 감각적인 디자인의 책과 소품을 함께 큐레이션 해두었다. 에스토니아 서점 체인 중에는 무난하고 깔끔한 대형 서점인 아폴로(Apollo)라는 곳도 있지만, 라흐바 라마는 아폴로보다 세련된 분위기로 압도한다. 처음에 이 서점을 찾았을 때 너무 예뻐서 디자인 예술 전문서점인 줄 알았다. 다음에 에스토니아에 가게 되면 또다시 들르고픈 곳이다.
여기까지 북유럽의 서점들을 두루두루 살펴봤다. 아마도 북유럽의 서점 체인들을 쏙쏙 뽑아서 소개한 글은 내가 최초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적어놓고 보니 꽤나 책덕스럽다. 언젠가는 북유럽의 독립서점이나 헌책방을 둘러보고 소개하는 시간이 오길 바라본다.
-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