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부르는 북유럽 추천 소설 BEST 5
여름의 한복판, 따뜻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이 이는 북유럽으로 떠나고 싶어지는 날들이다. 여름 휴가지 혹은 방구석에서 북유럽의 눈부신 여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소설, 혹은 온몸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시원해질 소설을 소개한다. 북유럽 소설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범죄 소설보다는 유쾌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 위주로 골라봤다.
토베 얀손은 우리나라에서 무민 시리즈를 쓴 동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북유럽에서는 소설가로서 꽤 명성이 높다. 『여름의 책』은 토베 얀손이 쓴 소설 중 대표작으로, 핀란드의 한 작은 섬에서 여름을 보내는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다뤘다. 민음사에서 나온 쏜살 문고 시리즈 중 하나로, 디자인이 예쁘고 가벼워서 가방에 쏙 넣어 다니기 제격인지라 제일 먼저 꼽아봤다.
평소 무민 이야기를 읽으며 토베 얀손처럼 북유럽의 자연을 잘 그려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여름의 책』 역시 섬세한 문장으로 펼쳐지는 핀란드의 여름 섬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뜨거운 햇볕과 노간주나무, 자갈과 마른풀 뭉치, 노란 안개가 하늘을 뒤덮은 바다와 태풍, 숲, 오래된 다락방이 있는 섬에 대한 묘사들은 자연스레 우리를 외롭고 작은 그 섬에 데려다준다.
책에서는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나는 여름을 닮은 소녀 소피아, 한때는 손녀처럼 모험심 강하고 자유분방했지만 이제는 천천히 인생을 관조하며 생의 마지막으로 향하는 할머니의 시선이 교차한다. 여름의 한가운데, 시작되는 삶과 저무는 삶이 대비되는 작품이다.
“나처럼 너무 나이를 먹으면 같이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많다고….”
“아니지. 할머니는 뭐든지 나랑 같이하잖아. 우린 늘 똑같이 하잖아!”
“좀 기다려 봐!” 한참 흥분한 할머니가 말했다. “아직 말 다 안 했다고! 모든 일을 같이한다는 건 나도 잘 알아. 벌써 끔찍하게 오랫동안 다 같이했고, 힘 닿는 데까지 다 보고 살아왔다고. 대단했어. 정말로 대단했지.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나에게서 미끄러져 나가는 거 같아. 이제는 기억도 안 나고 관심도 없어. 바로 지금 그게 다 필요한데!”
-본문 중에서
『여름의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토베 얀손의 단편소설집이다. 역시 민음사 쏜살 문구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되어 『여름의 책』과 세트 같은 이미지를 준다. 총 12편의 단편소설 중 여름이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들이 절반가량을 차지해서 추천해본다.
여름날 어느 가족에게 찾아온 괴팍한 도시 소년과 그들 가족의 충돌과 화해를 그린 「여름 손님」,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한밤중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헤매게 된 어느 노부인의 에피소드를 그려낸 「낯선 도시」, 완벽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짐도 없이 막연하게 떠난 여행길에서 원치 않게 타인과 자꾸만 얽히게 되는 내용의 「두 손 가벼운 여행」, 여름방학 동안 엄마 없이 별장에서 지내게 된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숲」, 갈매기들이 둥지를 튼 섬으로 휴가 온 연인이 등장하는 「갈매기들」 등 다양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짤막하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시작부터 끝까지 온통 핀란드의 여름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작렬하는 태양, 초록빛 숲, 야생버섯, 달콤한 아이스크림, 푸른 호수, 사우나 등 디테일한 묘사들이 탁월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앞에 절로 장면들이 그려졌다. 여기에 “당신이 읽은 그 어떤 범죄 소설과도 비슷하지 않을 것(범죄 소설 전문 리뷰어 CBTB)”이라는 평처럼 유쾌한 블랙 코미디 스릴러로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소설.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들, 죽음을 앞에 둔 주인공이 의도치 않게 계속해서 일을 키우고 마는 상황들이 끝없이 이어져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든다. 코엔 형제, 봉준호, 쿠엔틴 타란티노의 블랙 코미디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주목해야 할 작품이라는 출판사 서평이 공감 가는 책이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등 타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핀란드 작가들은 국내에 거의 소개된 바가 없다. 안티 투오마이넨은 내가 핀란드 여행 중 서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소설가였는데, 번역서로 접할 수 없단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선 기억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첫 책이 국내 출간됐다는 신기한 사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번역서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죽게 되리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다. 그건 마치 이 여름이 끝나더라도 다음번 여름은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며, 어떤 이유에선지 그 여름은 지나간 여름보다 훨씬 더 근사하리라고 믿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시시각각 짧아지는 지금 이 시간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광휘를 내뿜으며 얼핏 비치는 햇살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본문 중에서
앞에 소개한 작품들이 북유럽의 여름을 다룬 작품들이라면, 이 시리즈는 마치 냉동고에 들어선 듯 오돌오돌 떨리는 극지 체험을 할 수 있는 덴마크 소설이다. 흔히 한여름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공포물이나 범죄 소설을 추천하지만, 이 책은 열 스릴러물이 부럽지 않은 납량특집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번역도 매끄럽고 중간중간 일러스트도 예뻐서 더욱 눈길이 가는 책이다.
이 책은 북극에서 무려 16년을 보낸 작가의 자전 소설이라서 더욱 실감 난다. 해가 뜨지 않는 극야, 눈보라와 혹독한 추위만이 있는 북극에 고립된 사냥꾼들의 이야기가 환상 동화처럼 펼쳐지는데, 읽다가 계속 쿡쿡 웃음이 나는 유쾌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본래는 북극에서 겪은 놀라운 체험과 사냥꾼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잊지 않으려고 쓴 글들이었는데, 어떤 책 장수가 원고를 몰래 빼내 출판업자에게 넘기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이후 덴마크는 물론 유럽 여러 국가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오랜 세월 널리 읽히고 있다. 총 10권의 시리즈물이지만 독립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전권을 다 살 필요는 없다.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며 머나먼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할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스웨덴 소설이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이 소설을 쓰며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서서히 잃는 심정, 아직 내 곁에 있는 그리워하는 마음, 내 아이들에게 그걸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파란색 양장본에 아름다운 일러스트들, 소설 속 은은한 히아신스 향기가 내내 가슴에 남는 책. 참고로 이 책과 결이 같은 배크만의 또 다른 작품인 『일생일대의 거래』도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시한부 인생을 살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을 나는 무척 좋아해서, 북유럽 여행에세이『너만큼 다정한 북유럽』를 집필하면서 배크만의 책 속 문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두 권 모두 배크만이 한 말처럼 “거의 한 쌍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랑과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로 공통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예요, 할아버지?”
저는 작별인사를 잘 못해요.”
아이가 말한다.
할아버지는 이를 훤히 드러내며 미소를 짓는다.
“연습할 기회가 많을 거다. 잘하게 될 거야. 네 주변의 어른들은 대부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하고 있다고 보면 돼. 우리는 그런 식으로 작별 인사를 하지는 않을 거야. 완벽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연습할 거야. 완벽해지면 네 발은 땅에 닿을 테고 나는 우주에 있을 테고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을 테지.”
“나는 새벽이 그리워요. 더 이상 태양을 막을 방법이 없을 때까지 점점 더 짜증을 내며 조급하게 수면 위로 발을 구르던 새벽이. 호수 위로 반짝이던 햇살이 부둣가 돌멩이들을 지나 뭍으로 올라와서 정원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집 안으로 살그머니 쏟아져 들어오면 이불을 박차고 나와서 하루를 시작했잖아요. 사랑스럽게 졸음에 겨워하던 그때 당신 모습이 그리워요. 그때 당신 모습이.”
-본문 중에서
여기까지 여름에 읽으면 좋은 북유럽 추천 소설 5권을 꼽아봤다. 8월로 접어드는 길목, 여름의 향기를 품은 북유럽 소설들과 함께 기분 좋은 방구석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