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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씨 Jul 21. 2022

엄마 아빠도 여기 사람들처럼 뽀뽀해봐

덴마크에서 배운 행복의 조건

“엄마 아빠도 여기 사람들처럼 뽀뽀해봐."


덴마크 코펜하겐의 거리에서 진하게 키스를 나누는 커플을 보고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말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키스라니,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닌데…. 우리 부부가 당황해 주저하는 데도 아이는 기대에 찬 눈빛을 뿜어대며 우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에라, 모르겠다. 우리도 지지 않겠어! 나와 남편은 얼른 입술을 살짝 부딪혔다 뗐다.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에이, 뭐야, 너무 짧아! 더 길게~~~”


"누구든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든다." 코펜하겐의 한 호텔에 적혀 있던 문구.


덴마크에선 카페나 식당 벽에 붙은 문구에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에서도, 우리 가족에게 선뜻 친절을 베푸는 이들에게서도,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행복’, ‘사랑’ 같은 몰랑몰랑한 감정의 단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얼마 전 <핀란드인이 행복한 이유>에 썼듯이 핀란드인의 행복은 겉모습에선 잘 느낄 수 없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나는 행복해”라는 글자를 이마에 써붙여 놓고 다니는 것 같았다. 행복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노숙자가 내게 먼저 아침인사를 건네고, 금요일 밤엔 다 함께 술에 취해 거리에서 합창을 해댈 정도였으니….


덴마크 사람들은 2020년 세계 최초로 행복박물관을 개관할 만큼 행복에 진심이다. 행복이란 눈으로 확인할 수 없고, 손에 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버리는 감정들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그걸 주제로 박물관까지 만드는 덴마크 사람들은 정말 행복이란 게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계속 드러내 놓고 표현하는 행복에는 확실히 전염성이 있어 보였다.



◇ 행복해지기 위한 주문 하나, 서로 신뢰하기


온 나라 사람들이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보이는 덴마크가 핀란드와 더불어(한때는 핀란드보다 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인 이유를 이야기할 때 나는 ‘타인에 대한 높은 신뢰’를 가장 우선으로 꼽곤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 행복의 감정 중 타인을 신뢰하고 서로 감정을 교류하며 얻는 행복감이야말로 실로 지속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덴마크 사람들은 정말 믿음으로 똘똘 뭉쳐 있는 듯했다. 신뢰도 높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중요 조건이라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덴마크 사람들은 ‘누군가 나를 속이면 어쩌지’, ‘내가 괜히 나섰다가 피해를 입으면 어쩌지’ 같은 의심 따위 접어둔, 소위 ‘앞뒤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여행 도중 처음 만난 덴마크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고(이에 얽힌 이야기들은 여행에세이『너만큼 다정한 북유럽』에 보다 자세히 담았다), 좋은 이미지를 간직한 채 덴마크를 떠나올 수 있었다.

느닷없이 들이댄 카메라 앞에서도 세상 유쾌한 미소를 지어준 덴마크 청소년들. 『너만큼 다정한 북유럽』 중에서.

물론 이것은 현지 거주자로서의 경험이 아닌 여행자로서의 관점일 뿐이며 덴마크 사회가 무조건 행복하다고 주장하며 찬양할 의도는 없다. 어떤 사회든지 장점 뒤에는 감춰진 불편한 진실도 있기 마련. 개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고 타인에 대한 신뢰가 넘치는 덴마크에선, 그로 인해 불륜도 잦고 배우자와 잘 맞지 않을 경우 이혼도 쉽게 선택해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하기도 한다. 또 행복하지 않으면 스스로(혹은 주변에서) 문제 있는 사람으로 여겨져 심리 상담을 받는 일도 잦고, 이직이나 중퇴도 비교적 쉽게 결정하기 때문에 이것이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한다고. 덴마크 사회를 바라보는 데는 저마다 다양한 관점과 의견 차가 있을 것이기에 나의 글로 인해 혹여 덴마크란 나라가 지나치게 미화되지 않길 바라는 맘에 사족을 덧붙여본다.



 행복해지기 위한 주문 , 사랑을 표현하기


어렸을 때 나는 스킨십이 없어도 너무 없는 부모님을 보며 ‘대체 어떻게 관계를 하고 나를 낳았을까?’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 부모님은 내가 "엄마 아빠, 손 좀 잡아봐." 하면 그제야 마지못해 살짝 잡고는 금세 각자 할 일에 집중하곤 했다. 내가 '팔로 하트를 만들어 보라'라고 억지를 부려 겨우 남긴 엄마 아빠의 사진을 보면 씁쓸하다. 부모님에게 애정표현을 강요하던 그 시절 나는 ‘우리 가족은 겉으로 내색은 잘하지 못하지만 속으론 서로 무척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독립한 후 아이를 십 년 동안 키우면서 내 안의 ‘가족 신화’는 깨졌고, 대신 커다란 물음표만 남았다.


그때 우리는 정말 서로 사랑했을까?



우리의 기억 속에 행복은 한순간이고, 불행은 길게 남는다. 더구나 가족이란 아무리 매일 사랑의 말을 하고 스킨십을 나눈다 해도 찰나의 순간에 타인보다 서로 할퀴고 상처 주기 쉬운 관계가 아니던가. 그러니 우리는 더욱 서로에게 틈날 때마다 사랑을 표현하고, 또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나는 내 부모의 사랑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좁디좁은 마음인지라 전지구 적인 인류애까지는 품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 아이와 배우자에게 만은 다정한 눈빛으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스킨십을 하고,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그리고 그렇게 가정에서 모은 ‘원기옥’을 사용해 확장한 마음으로 주변 이웃들과 친구들에게도 신뢰의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 언젠가 나를 보고 자란 아이가 사회에 나가 타인을 의심하거나 속이려 들기보다는 스스럼없이 다가가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덴마크에서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신 행복 바이러스를 옮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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