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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Oct 11. 2024

예상했던 인생이 아닌 '다른 인생'이 선물이다.

내 생각과는 너무 달랐어.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아... 그래서 실망했어......... 그래서 놀랍고 기뻤어.


두 가지 경우 중 어떤 말을 더 자주 했냐 묻는다면 당연히 전자다. 농담도 좋아하고 잘 웃고 떠드는 편이었지만, 긍정보다는 부정을 많이 하며 산다. 류시화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읽으며 그런 사실이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걱정도 많고, 불만도 많고, 고민도 많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걸 더 자주 말하고 떠올린다. 이를테면 여름이면 덥고 짜증 나, 벌레는 질색이야. 비에 젖은 옷은 찜찜해. 도대체 더위는 언제까지인 거야!라는 말들을  일상의 언어로 사용했다. 그런 나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책을 만나니 부끄러웠다. 지금 내 삶의 모습이.


그리고 나를 만나 보니 자신의 생각 속 시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자유 영혼임을 느낀다. 타인의 예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라면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이 상상 밖의 인물이면 더 좋겠다. 불행과 행복의 내력이든, 상실과 성취의 경험이든 뜻밖의 이야기를 당신이 가지고 오기를 바란다. 우리는 두려움에 맞서 불가능한 사랑에 빠지고, 준비하지 않았던 일을 경험하기 위해 이 행성을 여행 중이니까. 가슴에 믿음을 품고 별에 닿기 위해.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17~18>


예측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나 내 예상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걷는 일은 두려웠다. 이십 대의 방황도 따지고 보면, 더 안전하고 쉬운 길을 찾는데 보낸 시간일 뿐이었다. 낯설고 위험한 상황이 싫어서 도망가기 일 수였다.  포부가 그때부터 크지 않았나 보다. 나만의 책상이 있는 직장이면 좋겠다는 소망이 전부였다. 마침내 그런 직장을 얻고 즐거운 생활이 이어진 적도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게 지루하고 나른해지고 말았었지. 쉽고 편안길에 서 있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곳은 조금 지루하고 많이 심심했으므로. 그리고 그게 고통으로 변하기도 했다.


 작가는 뜻밖의 이야기들이 존재하지 않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았기에 어긋남과 빗나감으로 가득 찬  오지 여행을 쉬도 없이 떠났던가? 익숙하고 정해진 틀이 싫어 머리를 기르고, 이상하게 옷을 입고, 다르게 말하고 쓰는 사람이 되었던 걸까? 작가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뜻밖의 인생도 선택하고 만들 수 있는 거라면, 지금껏 늘 예측 가능한 길만 가려했던 나에게도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겠지. 어쩌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이 나에겐 뜻밖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 뭐 네가 작가가 됐다고! 진짜?!"를 외치며 나에게 달려들 사람이 한 둘이 아닐 테니까. 코 앞으로 다가온 오십에는 그런 뜻밖의 선택들을 더 많이 해보고 싶다. 나에게 불가능하다 여겼던 일들 - 영어로 자유롭게 말하기, 해외여행 가기, 등단작가되기, 뱃살 없는 인생, 여러 사람 앞에서 강의해 보기-을 해내는 오십 살. 글로 쓰보니, 마음이 꿈틀 거린다. 마치 그 일을 향해 방향을 튼 것처럼.


정해진 삶을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닐 테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이유다. 어릴 적 꿈꿨던 인생이 아니라고,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은 이게 아니라고, 실망하기보다는 기대하지 않았던 인생이 주고 있는 이 경험들을 즐겨보자는 작가의 말에 용기를 얻는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몰라 그 길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빨간 머리앤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과, 생각지도 못한 우연들을 선물하는 '다른 인생'을 발견하고 알아차리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반전이 있는 드라마가 더 흥미롭고 재밌듯이 그런 선택이 가져올 예상밖의 일들로 다채로워지고 싶다.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그 다른 인생의 기쁨은 부스러기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같은 책,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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