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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Oct 18. 2024

오늘의 좋은 글을 완성하는 일

쓰는 일에 집중하려는 마음

그런 제 처지를 비판하지 않았어요. 블로그의 방문자 수를 늘리려고 애쓰지도 않았고요. 왜냐면 글을 쓰는 목적이 반드시 책을 내겠다거나 유명 작가가 되겠다는 것에 있지 않았으니까요. 쓰는 행위만이 목적이었어요. 글 한 편에 코를 박고 완성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시를 더해 산문을 쓰고, 영화를 본 뒤 감상을 쓰고, 책을 읽고 좋은 구절을 정리하고, 새로운 카테고리의 게시판을 만들어 시 없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기도 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마음껏 실패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혼자서도 글쓰기와 잘 놀았던, 참 좋았던 시기 같아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좋은 글을 쓰려는 마음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마음을 글로 써내는 것, 방문자 수를 늘리거나,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 같은 것에 시간을 두지 않는 것, 내 글의 부족함 여기에 있구나 한다. 좋은 글을 쓰려는 마음보다는 숙제처럼 끝내는 글쓰기, 매일 한 편의 일상글을 의미 없이 정성 없이 써내면서도 뒤돌아 보지 않는 허술함 같은 것에. 좋은 재료를 찾아 깨끗이 씻고 적당한 크기로 다듬고, 양념의 배합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그것들을 잘 섞어 미리 준비해 두는 요리처럼 정갈하게 준비하는 과정이 글쓰기에도 필요하다.


우산을 썼어도 일분 안에 신발이 젖을 정도로 극한 비가 쏟아지는 퇴근길에 약국을 향했다. 며칠 전 팔 굽혀 펴기를 하다가 왼쪽 어깨 쪽이 삐끗하면서 통증이 심해졌는데, 파스를 붙여도 별 효과가 없어 근육약을 사러 갔다. 아파트 정원의 꽃들이 비바람에 목을 꺾었고,  빗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풍경 속을 걸으며 신발이 더 젖지 않도록 조심했다. 빗물 여러 개의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 더 빠르게 내리다가 서로 뭉쳐 그대로 쌓이는 중이었다. 야트막한 비탈길 위로 흔들리는 하얀 날개가 보였다. 나비였다. 나비가 비에 젖었나 보네 하며 지나치려다가 멈춰서 가만히 우산을 씌어주었다. 잠시라도 빗물을 피해 쉬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나비는 계속 움직이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갑자기 부는 바람에 휩쓸려가면서도 지지 않았다. 비는 더 거세졌고, 나비의 두려움도 커졌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비가 무거워지고 쭈그리고 앉은 등이, 가방이, 신발 뒤꿈치가 빗물에 젖어가자 나는 일어섰다. 나비를 두고 그냥 가야 했다. 그때 나비는 온몸의 힘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수구 덮게 사이로 빨려 들어갈 위기에 쳐해 있었기 때문이다. 필사적으로 두 다리에 힘을 모아 버텼지만 물살과 바람은 나비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비는 결국 빨려 들어갔다. 떨어지면 바다였다. 그 순간 나는 눈길을 거두고  발길을 돌렸다. 하수구 안으로 떨어지는 나비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날개를 잡아 안전한 곳으로 옮겨줄 용기도 없었다. 그 얇은 날개가 두꺼운 내 손가락에 찢어질까 봐 겁이 났고, 거인의 손에 잡힌 나비에게  끔찍한 공포를 안겨주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약국으로 갔다. 두 가지 종류의 진통제를 받고 돌아오는 길일부러  나비가 있던 곳을 지나갔다. 나비는 보이지 않았다. '끝났구나'싶었다. 내가 도왔더라면, 물로 가득 찬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죄책감을 안고 지나치려고 할 때  구멍 사이로 작은 생명체가 보였다.


나비였다. 떨어지지 않을 안전한 곳에 비를 피하며 쉬고 있었다. 나비는 알고 있었구나.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 내 눈에만 애처로워 보였을 뿐이다.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곳,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았던 나비. 나비는 아마 비가 그치고 세상이 다시 고요해질 때를 기다렸으리라. 해야 할 일이 뭔지 아는 사람은 두려움 속에서도 방향을 잡는다.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거창한 목표를 설정해 놓거나,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해하는 대신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 한강도 그랬으리라 좋은 글을 쓰고, 독자를 만나고 또 더 좋은 글을 쓰는 일상. 고요하게 머물며 글을 쓰고 싶다는 소박한 소감을 보며, 두 번씩 세 번씩 반하고 말았다. 내게 필요한 일은 오늘의 좋은 글을 완성하는 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해서 은유 작가님처럼 혼자서 글을 쓰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적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지금의 시간이 참 좋았던 시기였다고 회고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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