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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Nov 01. 2024

서로를 견뎌주는 것으로 용서를 배운다.

육 남매의 막내라는 지위는 첫째나 둘째 혹은 넷째나 다섯째가 누리는 것과는 다르다. 게다가 태어나 일 년 만에 엄마를 잃은 막내라면 더더욱 주변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 그러나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일곱 살엔  나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걸 느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사람을 붙잡는 거였는데, 다섯 남매 중 가장 만만한 사람이 막내언니였다. 나이차이도 가장 적고 함께 있는 시간도 많으니 언니에게 착 달라붙어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언니는 나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즐거웠으니,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해놓고 친구들과 놀고 들어 온 적도 있다. 눈치가 빨랐던 나는 언니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 언니 나도 같이 가고 싶어"란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언니 곁을 지켰다. 끔씩 언니는 나를 윽박지르거나 강제로 때 놓고 나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울면서 언니를 불렀고 있는 힘껏 뛰어 뒤쫓아갔다.   언니는 얼마나 내가 귀찮았을까?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고 싶었을까? 시간이 더 흘러 나에게 10살 터울의 조카가 생겼을 때, 나 역시 조카를 떼어 놓으려고 악을 쓰며 사춘기를 보냈다. 그렇게 재밌게 놀아주던 이모의 변심이 조카는 얼마나 야속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온 조카를 메몰차게 돌려보냈던 나는 성인이 되고 엄마가 되어  울며 불며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던 두 아들에게 나의 시간을 모조로 쏟아부어야 했으니, 시간이 마치 원처럼 돌고 나를 똑같은 자리에 앉혀 놓는 것 같다.

 


용서해 주는 것, 서툴렀던 어제의 나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는 것. 우리는 그런 어제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고 고통을 겪었고 심지어 누군가는 여기에 없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그건 우리의 체온이 어쩔 수 없이 조금 내려간, 하지만 완전히 얼지는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는 다시 돌아왔고 여전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힘들다면 잠시 시선을 비껴서 서로 견뎌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되돌릴 수가 있다. 근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가 서로를 견디며 왜냐고 묻는 대신 대화를 텅 비운 채 최선을 다해 아주 멀어지지만은 않는다면?(사랑밖의 모든 말들,김금희)


그렇게 살지 못한 것 같다. 서툴렀던 어제의 나와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용서는 알지 못했다. 언제나 부족한 나를 탓했고 상대를 미워하며 책임지라고 소리치지 않았나 싶다. 조카를 메몰차기 밀쳐 집으로 가라고 했던 쌀쌀맞기 그지없었던 지난날의 나, 뭐든 쉽게 포기하고 겁내고 도망갔던 어리석은 나를 얼마나 오랫동안 미워했는지 모르겠다. 가지고 있었던 모든 사랑을 온전히 나에게 쏟아부었던 언니에게 짜증 부리며 '왜 이것뿐이야'고 서운해했던 부족한 마음을 얼마나 자주 품었는지.


사랑은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거라 했지만, 이 문장 속에 사랑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두면서 완전히 멀어지지 않고 서로를 견뎌주는 것. 너 때문이라는 말은 숨을 들이켜는 한 호흡 안에 넣어두고 책임을 묻지 않아 주는 마음을 오늘에서야 배운다. 뭐든 바꾸고 고치고 해결하고 더 나은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게 온전한 답은 아니구나 한다. 잘 못하고 서툴렀던 그리고 여전히 미숙한 서로를 견뎌주는 마음을 비어 있던 작은 공간 안에 소중히 담아 둔다. 그 마음이 남편을 아이들을 시부모님과 육 남매를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을 용서하게 만든다. 오늘밤 짧은 순간의 빛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온화함을 품은 채 잠들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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