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같건 믿지 않지만, 그래도 달릴 거다.

by 쓰는 사람 효주

어젯밤엔 김애란의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었다. 오늘은 전직 아나운서 김소영의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을 완독 했다. 방송대 공부가 끝나고 어머님 수술도 끝나고 사주 공부를 통해 내 아호를 비롯해 가족들과 친정식구들 그리고 절친의 아호까지 머리 싸매고 짓는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독서에 탈력이 붙었다. 남아 있는 일들은 이제 독서뿐이란 생각. 마침 빌려온 책들이 좋기도 했고, 읽고자 하는 마음도 커서 즐거운 독서가 진행 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 장 읽다 내려놓고 휴대폰을 켰던 나인데 참 다행이다. 독서가 다시 와 준거. 그리고 뭔가 끄적이고 싶은 열망도 같이 와준 게.


멋진 글 따위를 쓰겠다고 생각했으니 쓰기가 얼마나 망막했을까? 내가 제일 잘하는 글쓰기란 앞뒤 제지 않고 계획 같은 거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마구잡이 써가는 쓰기다. 애초에 계획도 잘 못 세우고 세워봤자 지키지도 못한다. 사둔 수첩이 아까워 중간에 볼펜으로 미리 써둔 계획표를 지워버리고 바뀌어버린 방향으로 새로운 계획을 쓰다가 그것조차 무의미한 것 같아 멈춰버리는 사람이 나 아닌가? 사람이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지. 본능을 거슬러 다른 걸 시도하지 말자. 위대한 작가가 될 팔자가 아니라는 건 이미 사주분석으로 끝났다.


다만 읽고 쓰기를 즐기는 사람이란 건 증명되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오랜만에 무지 평화로운 일요일을 보냈다. 한 달에 딱 두 번 쉴 수 있는 일요일인데 오늘이 이번 달 첫 휴일다운 일요일이었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pc방으로 바캉스를 떠나 주고 남편은 쉬기만 하는 일요일을 불편해하는 사람인지라 대리점으로 짧은 출근을 했다. 이로써 황금 같은 일요일에 나 혼자 보낼 수 있는 특권까지 얻게 된 거다. 사실 마음껏 유튜브를 보거나 평소 보고 싶었는데 못 본 영상을 시청하려고 했다. 그런데 김소영 아나운서의 글이 생각보다 맛깔나고 그녀가 소개해주는 책들이 무지 재밌는 바람에 원하는 걸 못하고 내내 책만 읽었다. 그녀의 해박한 독서력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어쩌면 내가 읽은 몇십 권의 책 중 그녀가 읽지 못한 책이 있을지도 모르니 너무 분해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그녀가 친절하게 소개해주는 책들을 모조리 적어 두고 리브로피아를 이용해 동네 도서관에 있는 것들은 나만의 서재에 담아 두었다. 그녀가 소개해준 독서지도를 따라 탐험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 난다.

이 기세를 몰아 올해 부족했던 독서량을 끌어올려야겠다.


더위가 조금 풀렸다. 에어컨 풀가동이었는데 어젯밤부터 꺼두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거실 창문을 열어보니 시원하다. 이대로 여름이 물러나진 않겠지만, 턱밑까지 달아오르는 열기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4일 전부턴 큰애와 운동을 시작했다. 여름이면 심해지는 아토피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 곧 대학생이 될 아이가 집을 떠나 생활할 날을 대비하기 위함도 있다. 움직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녀석인데 운동하고 나서의 개운함이 싫진 않나 보다. 게다가 4일째인 오늘은 땀 때문에 괴롭게 긁는 모습이 훨씬 줄어들어 헬스장을 나올 때 둘 다 기분이 좋았다. 이혼숙려캠프의 상담가 이호선 씨가 했던 말이 옳았다. " 운동하세요. 근육이 얼마나 자존감을 높여주는지 몰라요. 우울할 땐 운동하세요"라는 말. 4일간의 운동이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나를 일상으로 꺼내 준 것 같다. 원래 했던 이가 안 하면 병이 온다고 했는데 내가 몇 주간 그 꼴이었다. 다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운동이 전해준 걸까? 마음을 움직이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변화의 가장 강력한 시너지를 주는 것 같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고 그것으로 내 삶을 지켜낼 수 있다면! 달려야겠지. 숨이 턱밑까지 막힐지라도 그 고비를 넘길 때 찾아오는 성취감을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내일도 달릴 거다.(계획 같은 거 안 세우는데 한 번 또 속아보자) 내일도 쓸 거다. 내일도 읽을 거다. 보잘것없는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 나에겐 이것 말고 삶의 무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