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치 않게 태어났지만, 그것으로도 괜찮다.

by 쓰는 사람 효주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은 늘 조급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나는 지금과 비슷한 삶을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듯싶다. 삶을 바꾼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내가 조금 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게 옳았다. 그러지 못했기에 후회는 길고 변화는 더디다. 사실 너무 오랜 시간 걸어왔다면 다른 길로 빠져나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게다가 그 길을 나 혼자 걷는 것도 아니고 함께 걷는 가족까지 생겼다면, 그냥 지금 걷는 길을 내 길이라 여기는 편이 훨씬 낫다


하지만 가끔 열망이 너무 강하면 함께 걷던 가족들을 두고 홀로 다른 길을 찾아 낯선 길로 빠져나가는 모험을 강행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럴 경우 우선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새로 찾아낸 그 길이 결국엔 혼자 가는 외로운 길일뿐이란 사실을 깨닫고 좌절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둘째 언니는 오랫동안 소망했던 시골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자그마한 농가를 얻었다.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키우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일상. 꿈에 그리던 생활이라 신이 났고, 모든 걸 얻은 사람처럼 행복했다. 그러나 몇 년의 시간이 지나자 끝도 없이 자라는 꽃과 풀을 정리하는 일은 버거워졌고, 때때로 등장하는 뱀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오래되고 낡은 집은 서서히 허물어져가는 중이라 고쳐야 할 곳이 산더미였다. 즐거웠던 혼자만의 시간은 외로움으로 변질 됐지만, 정작 본인은 깨닫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유튜브를 친구 삼아 지낸다.


그렇다면 언니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 아닐 테다. 다만 어떤 길이든 원래 길만큼 어렵고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테다. 가끔 서운함이 몰아칠 때마다 언니는 읇조린다. " 이 집 팔아버리고 싶다' 가까운 몇 년 사이 수도 없이 뱉는 넋두리지만, 정작 팔려고 부동산을 알아보거나 매매 광고를 낸 적은 없으니 나는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은 게 속상한 사람의 한탄으로 여기면서도 정작 " 그래 언니, 그냥 팔아버려"라는 확신에 찬 대답을 건네곤 한다. 전국의 오만 산을 돌아다니며 주워온 꽃을 심어 놓고 정원 여기저기 정신없이 피워대는 꽃들의 어지러움에 질려 낫과 호밀을 들고 사정없이 그것들을 베어버리는 언니의 마음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알 턱이 없다.


결국 원하는 걸 가지더라도 그 안에는 우리가 태초부터 원했던 원대한 삶은 없다. 그것만 있다면 모든 일이 순조로울 텐데 했던 마음은 그것이 와도 채워지지 않는다. 일전에 나는 큰 아이 아토피만 해결된다면 내 인생 아쉬울 것도 바랄 것도 없을 거라 장담하며, 두 손을 맞잡고 하느님을 찾아 울부짖었다. 그러나 일상을 뒤흔드는 일은 끝도 없이 찾아왔다. 아이의 아토피 말고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나를 짓누를 때면 이제 기도대신 '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인가. 그렇담 빨리 팔십이 되고 싶다'라는 혼잣말을 되뇐다. 내가 인생이 주는 모든 고난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늙고 힘이 없어지는 것뿐이란 결론을 내린 이유는 그때가 되야지만 내 어깨에 내려진 짐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려놓을 수 있을 거라 여기기 때문이다. 만약 팔십에도 내가 살아 있다면, 나는 오늘의 이 글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아직 인생을 덜 살았던 어리석은 자의 글이구나 자조할지. 정말 예언처럼 딱 맞았다면 허탈하게 웃을지. 알 수 없다.




다른 길로 빠져나갈 수 없다면, 이 길 위에서 가능한 다른 일들을 찾아봐야겠다. 나는 오래 달릴 수도, 빠르게 달릴 수도, 뜀을 뛸 수도 있다. 길을 파서 굴을 만들거나 새로운 씨앗을 심어 놓을 수도 있겠지. 이 길만이 보여주는 것들을 천천히 느리게 구경하며 다시 살아도 이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믿음으로 나를 위로해 줄 수도 있다. 김영하 작가님 말씀처럼 가능한 수많은 또 다른 나의 삶을 상상하며, 이 삶의 무게를 0으로 놓고 가볍게 훌쩍훌쩍 이상하게 걸어보는 즐거움도 누려보겠다. 대단치 않게 태어났지만, 그것으로도 괜찮은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