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여행> / 요시모토 바나나

떠나지 않은 여행보다는 떠난 여행에 이야기가 있다.

by 쓰는 사람 효주

매일이, 여행이란 제목을 보곤 피식했다. 그럴 수 있나? 싶었고 이것도 흔하디 흔한 여행에세이인가 했는데 작가가 요시모토 바나나였다. 이십 대의 한 시절 이 작가의 책이 좋아 가까이 두고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안녕했고 다시 만나고 싶은 다정한 마음에 집으로 데려왔다. 2026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 딱 좋은 에세이었다. 처음 몇 장은 소소한 에세이구나 했고, 역시 일본 스러움이 가득한 일본인의 글이다 싶기도 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작가의 필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새삼 깨달으며 겸손한 마음까지 들었다. 사소하고 흔한 이야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집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시선을 붙잡아 주는 어떤 힘. 글을 오래 쓴 사람만이 가진 내공 같은 걸까? 대단한데 하는 작은 탄성 같은 게 입안에 맴도는 마무리 앞에서 처음 가졌던 도도한 태도를 급하게 반성하며 고쳐 앉았다.


작가로서 혹은 개인으로 경험했던 여행의 추억들은 특별하진 않았다. 이탈리아의 황홀한 풍경에 감탄하고 추운 겨울날 황량한 들판과 얼어붙은 강의 덴마크도 나름대로 좋았다는 고백과 토스카나의 온천에 다녀온 일. 날씨 때문에 힘들었던 여행지에서의 추억 말고도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깨달은 사실들, 사랑하는 반려견을 떠나보내며 느꼈던 강렬한 슬픔처럼 일상의 일을 기록해 둔 책이다.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더 깊어지고 진해졌다.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사람은 이런 인생을 살고 있었구나. 그러면서 소설을 썼구나하는 생각들이 이어졌고, 작가가 가진 내면의 진지함이라든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든가 궁극에 도달하고 싶은 삶이라든가를 지켜보며 읽었다. 일본 스러움이 가득한 일본인이라서 조금 아쉽다가도 그런 그녀이기에 가능한 소설들이 있었겠구나 했다. 작가의 개인적인 삶을 엿보는 일은 나에겐 꽤 흥미로운 일이다. 글 쓰는 사람의 삶을 특별하게 여기는 편이니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도 신나게 읽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녀 나름대로 아픔이 있는 삶이겠지만, 글을 읽은 독자로서 보자면 이만큼 잔잔한 삶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일본인 특유의 절제된 감정 표현이 가득한 문장들 속을 거닐었기에 느꼈을 감정일 수도 있지만,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그녀의 삶이 강력한 보호망 안에서 안전하게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잔잔함 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부러움도 느끼면서 별 것 아닌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좋았던 추억으로 간직하자 마음먹었던 작가를 보며 괴로운 일로 가득하기만 했던 2025년 12월을 다시 바라보기도 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고 좋은 경험이었어하는 마음으로 지금을 지내보는 일은, 뭐든 잘 될 거라 믿는 무한 긍정과는 달라 보인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 여행보다는 떠난 여행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풍성한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늘 보다는 무슨 일이든지 터지고 그것을 버티고 견뎠던 오늘이 더 좋은 경험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자 했다.


다 나빴던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아이의 대학진학 실패를 나의 실패인 듯 좌절하고 내내 무력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 깊은 우울에서 나를 꺼내 준 건 역시나 책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씨는 당신의 경험을 열심히 글로 써냈을 뿐인데 나는 그곳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다 나빴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 그 나쁜 게 진짜 나빴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까지 깨달으면서 아픔을 견디는 경험을 통해 나는 또 성장하겠구나 했다. 그런 마음이 찾아와 준 것도 바나나 씨 글 덕분이다. 작가님들께 늘 고맙다. 특히 자기 인생을 풀어주는 분들께 더더욱.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혹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기에 위로받거나 작은 희망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곤 하니 말이다.



글이 가진 힘을 알게 되면, 별 것 아닌 일들도 글로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자잘하고 사소한 일화를 기록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보여도 때때로 누군가에겐 별의 순간을 선물하는 법이니까. 자기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은 늘 아름답다. 무력하고 우울했던 2025년 한 해 돌아보니 그럼에도 불구하는 노력했던 내가 보였다. 다시 읽고 다시 쓰면서 멈추기를 서두르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려 애썼던 내가 보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의 일이다. 책 속에 작가의 어떤 문장이나 어떤 일화가 아니라 책 전체가 그렇게 나를 바꿔 주었다. 그렇게 내 삶을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성공과 그럴듯한 결과라는 미래를 그려보지 않고, 오늘 하루를 잘 사는 노력 말이다.



해서, 2026년 한 해는 브런치에 독서 일기를 쓰려고 한다. 조금 다른 공간에서 조금 다른 문체를 품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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