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은 지난 시간과 오늘을 이어주는 그리움 같은 것.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잊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헌책방에 얽힌 희미한 장면들이 있다. 더운 여름날 재미도 없는 책들이 가득한 책방을 걸었던 거다. 그곳이 어디인지 그때가 언제였는지 남아있는 데이터는 미약하지만, 높게 쌓아 올린 책더미와 단단한 끈으로 묶인 채 자판에 놓여있던 책 꾸러미들. 오래되고 낡은 표지와 아무도 들쳐보지 않은 채 그대로 버려진 빳빳한 표지들의 쓸쓸한 단정함 같은 게 생각난다. 이야기는 없고 장면만 남은 헌책방과의 추억은 이것뿐이다. 게다가 오늘날 내가 갔던 그 책방길이 남아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추억을 되새기며 찾아가기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래저래 앞으로도 헌책방과의 인연은 없어 보이니 이렇게 책으로라도 그리움을 대신해 본다.
가쿠타 미쓰요는 소설가다. 오카지키 다케시의 명을 받아 일본에서 헌책방으로 유명한 동네를 찾아가 괜찮은 작가들의 책을 구매해 보라는 명을 받는다. 소설가답게 책을 사랑하는 미쓰요는 설레는 마음으로 헌책방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책을 만나거나 무척 가지고 싶었던 책들을 조우하며 즐거운 책 쇼핑을 이어간다. 그런 내용이 전부라서 사실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 많은 헌책방이(지금 몇몇 가게는 폐업했다고 한다.) 즐비한 거리가 있다는 것과 다양한 마니아층을 위한 개성만점의 헌책방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일본과 우리의 독서량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내용이든 즐겨 읽는 독자가 있다면 반드시 책이 되는 나라가 일본인가? <남성사육법>, <좋은 생각을 하는 해외 여행술>, <직업별 여성 유혹법>이란 제목을 보면 소수의 독자를 위해서도 기꺼이 책을 쓰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읽힐만한 책, 상업적으로 성공할만한 내용, 유명작가나 연예인의 산문처럼 여러 사람에게 팔리는 책 위주로 발행하는 우리의 출판환경이 조금 아쉬웠다. 우린 독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독서가 그럴듯한 취미가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이 되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 좀 읽는다고 으스대지 않는 문화나 한 달에 한 두 권 읽는 정도는 당연히 읽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참 좋겠다.
일본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AI기술이나 디지털 전환에 느린 일본은 아직도 사람의 손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하며 전자메일이나 문자메시지보다 우편으로 공공업무를 전달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그런 일본을 뒤쳐진 국가라고 안쓰러워했던 것도 사실인데 이 책을 읽다 보니 꼭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은 무탈해 보였다. 아날로그 감성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누리며, 오래 기다리는 불편을 감내하는 그들이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물론 이것이 한국사회의 모습이라면 답답해 죽겠다고 난리 칠 테지만.) 느리게 가는 만큼 분명한 경제적 뒤처짐은 각오해야겠지.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져놓은 소우주 안에서 여전히 행복의 길을 찾아낼 것 같다. 헌책방도 그중 하나일 테다. 그때 아니고서는 누릴 수 없는 어떤 문화가 사라지는 일은 당시의 생각과 감성을 잃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혹은 빨리빨리라는 독촉문화의 일환으로 이어지는 삶의 변화를 겪는 동안 우리를 단단하게 지켜줬던 생각과 감성은 사라지고 있었을 테다.
해서, 낡은 헌책방 안을 오가는 어린 학생들을 지켜보며 그들이 이런 공간의 신비함과 고요함을 아는 어른으로 자라길 희망했던 미쓰요처럼 나 역시 잊힌 헌책방을 거닐며 가게 안을 오가는 사람들과 따스한 추억을 공유해보고 싶다. 소중한 것이 사라지거나 잊히는 게 안타까운 사람들은 그것의 가치를 알고 있는 거다. 누군가가 열심히 일궈낸 시간들이 그냥 잊히는 게 싫었던 사토씨는 <인쇄 해체> 전시회를 공지할 때 다음과 같은 문장을 펴내 오래되고 낡은 것들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 헌책방을 운영하며 드는 생각 중 하나가, 물건이나 사람의 소멸은 그 자체가 기억이나 기록의 소멸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물건만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하고, 또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은 남지 않을까요."<153페이지>
그리고 오카자키 씨는 그 '가능성'을 잇는, 이야기를 넘겨주는 중개자가 헌책방이라고 말한다. 큰 아이가 오랜 시간 좋아했던 토마스와 친구들의 기차가 생각난다. 아이의 오랜 친구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작은 기차는 아직 우리 집에 남아 있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이는 오랜 시간 좋아했던 것들을 기억하겠지. 미니멀 라이프를 따라 지난 시간의 것들을 쉽게 쉽게 버렸던 게 조금 후회된다. 삶을 이루는 소중한 시간을 함께 했던 것이라면, 조금 더 나와 같은 공간에 머물도록 해야겠다.
일본의 아주 오래된 서점들을 둘러보았지만 사실 어디가 어디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작가가 감탄하며 구매한 책의 작가들도 전부 모른다. 한마디로 외계어 수준의 책을 읽은 것과 같은데도 일본이 소유한 헌책방들이 부러웠고 그네들만의 소중한 문화 같은 게 샘이 났다. 우리에겐 없는 게 그들에게 있으니 언제고 나는 잃어버린 것이 그리워 일본의 작은 헌책방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시절에 건설된 수많은 건축물들을 보러 로마로 아테네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잃어버린 어떤 것을 찾고 싶은 마음에 그 먼 여행을 자처하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안에는 잃어버린 헌책방이 있는 건 아닐까?
P.S 혹시 제 글을 읽고 알고 있는 헌책방이 있으면 댓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