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진 않다.
자영업자는 명절연휴가 특히 바쁘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지고 도시를 떠나 부모와 친척들이 사는 지방의 소도시로 도착하는 이들이 는다. 그들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마트 진열장이 비지 않도록 꽉 채워주는 일. 거래처마다 꼼꼼하게 제품을 넣고 주문이 들어오는 커피숍마다 우유배달을 한다. 바쁜 만큼 몸은 힘들고 몸이 힘드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마감은 다가오고 읽은 책은 없고 무엇으로 이번 연재를 채울 것인가 고민하다가 지난주에 미리 읽어둔 책을 집었다.
먼저번 연재와 동일한 작가의 책이다. 수필집 코너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은유작가의 책을 여러 권 발견했었다. 무심히 지나는 시간 동안 또 이렇게 글을 쓰셨던 걸까? 하는 기쁜 마음에 있는 책을 한꺼번에 빌려왔다. 앞으로 읽어야 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여러 권 있다는 건 신나는 일이다. 새로 신청한 온라인 독서모임과 기존의 오프라인 독서모임으로 숙제처럼 끝내야 할 두꺼운 책이 두 권이나 있음에도 불구하는 우선 은유작가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을 꺼내 읽었다. 조금 묵직하고 진지한 글이었지만, 생각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삶을 관찰하게 만드는 문장들이라 성장하는 마음이었다.
중학교 때였다. 중학생답지 않게 작고 말랐던 나를 자기 품에 안고 엉엉 울었던 둘째 언니. 무슨 슬픔이 치밀었는지 몰라도 언니는 불쌍한 우리 막내라는 소리를 기도처럼 반복하며 소리쳐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맞게 한껏 불쌍해져야 했던 나는 사실 마음속으로는 불쌍해지고 싶지 않았다.
첫돌이 되기 일주일 전 엄마는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들이쉬었고, 칠 년이 지난 후 아버지도 일 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엄마 곁으로 가셨다. 새로운 사람과 만남 중에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그들은 어느새 불쌍한 사람을 보는 눈이 되어 나를 보곤 했다. 당사자는 부모 없이 성장한 것이 그렇게 슬프거나 가슴 아프지 않았음에도 그런 눈과 마주치면, 나는 불쌍한 사람의 표정을 지어야 했다. 대화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고 서로 간의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던 한 장애인 여성은 자신에게 다가와 꿈을 잃지 말라. 얼굴은 예뻐서 다행이다.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끌어안고 우는 사람들을 마주했다고 한다. 그녀는 오히려 "내 인생이 그렇게 슬프지 않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녀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부모님의 부재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꼭 인생 전체를 흔들 만큼 큰 슬픔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결혼 후 찾아온 남편의 불의의 사고와 큰 아들의 아토피가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었고, 일상을 흔드는 슬픔이었다. 그때만큼은 누가 뭐래도 스스로가 불쌍했고 안쓰러웠다. 위로와 사랑이 간절했다. 그러나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부모 없이 성장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고 남편의 사고와 아이의 병치례는 그러려니 한다.
에세이지만 철학서에서 만날 법한 문장들도 있었다.
"늘 그랬다.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삶에 대해 이만큼 정답에 가까운 문장을 발견하긴 쉽지 않다.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리운 내 삶을 대신 그려준 그녀가 고맙다.
"시를 읽는다고 불행이 행복으로 뚝딱 바꾸지는 않지만 불행한 채로 행복하게 살 수는 있다."
시를 잘 모르는 나는 책에서 그런 행복을 찾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불행을 감당하곤 했다. 시를 사랑하고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들은 견뎌내야 할 인생이, 버터내야할 일상이 있을 테다.
" 생의 빈틈이나 존재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고 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무리한 욕심을 부린 적이 많다. 수시로 친구를 귀찮게 했고 가족들에게 의지했으니까. 그런데 욕심을 내려놓고 책과 음악을 삶으로 데려오니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인생의 꽃 시절은 짧고, 삶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지속된다."
내 삶의 꽃 시절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너무 짧았거나 아예 없었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삶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지속되는 중이다.
이런 문장들이 와닿았다는 건, 나도 작가만큼 아팠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작가만큼 삶을 고민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보다 더 큰 건 그녀와 내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라는 사실에 있을 테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같은 세대의 여성들은 대개 비슷한 경험과 아픔을 공유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직면해야 했던 일과 감수해야 했던 모욕과 당할 수밖에 없던 차별이 쌍둥이처럼 존재한다. 개별적인 인생 안에서 이토록 닮은 과정이라니. 사회가 그어 놓은 한계선은 우리의 고유성을 지우고 보편적인 다수가 되게 하나 보다.
조용한 자기 고백을 통해 작가는 삶을 채운다. 읽고 쓰는 일로 인생을 소비하는 과정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 시간만큼 오롯이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겠지. 자기로 사는 사람은 대체로 아름다운 법이니까. 일요일 저녁시간을 쓰는 일로 채웠다. 하루 두 시간도 자신에게 쓰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오늘만큼은 그런 불행에서 해방되었으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