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다른 책을 읽지 못했다.
식탁옆으로 진열된 책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책부터 읽어볼까 하는 마음의 눈을 켠 체. 이유리의 웨하스 소년을 들었다고 놓고, 2월 독서모임 선정도서인 손자병법을 숙제처럼 읽었다. 입맛을 잃은 사람처럼 책맛이 덜했다. 왜 이렇게 책이 멀지? 맛이 없지? 밍밍하지? 하다가 가만 보니 먼저 읽었던 은희경의 <빛의 과거>때문인 걸 알아챘다. 아 맞다. 그전에 너무 강렬한 책을 읽어서 그렇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 혀가 경험해야 하는 권태기처럼, 모든 책이 시시하고 재미가 없었다. 이야기를 떠나보내기 위해선 내 안에 가득 찬 것을 꺼내는 수밖에 없다.
1977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낯설었다. 그 시간은 세상과 만난 지 불과 1년이 지났을 뿐이었고, 초록이 반짝이던 5월에 엄마를 잃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체 누군가의 등에 업혀 있었을 테다. 서울이라는 까마득히 먼 공간 여대를 입학한 신입생들이 있었다. 사감과 부사감의 감시 속에서도 미팅을 나가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학업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턱이 없었다. 우리 집은 해방기 때와 다름없이 소를 몰아 논과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몸이 부서져라 농사를 지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은희경 작가 덕분에 1977년 여대생을 만났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엿보는데 그렇게 흥미로울 수 없었다.
2017년 육십 언저리의 중년 여성은 40년 된 친구가 있었다. 만나고 헤어짐이 반복되는 인연의 끈은 두 사람을 오래도록 묶어두었다. 그러나 '나'는 K가 썼다는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란 소설에 관심이 없다.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K는 다분히 자기중심적이고 언제나 '나'란 존재를 자신보다 하등하고 불쌍한 존재로 인식했는데 '나'는 그런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어떤 흠도 들어내지 않았다. K의 들러리를 자처하면서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말더듬증을 가진 '나'는 말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을 침묵 속에서 관찰해 왔을 테다. 그들에게 받은 상처를 안으로 삭히며, 끝내 말하지 못하는 일들을 쌓아왔던 '나'는 침묵으로 스스로를 지켜왔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비겁한 자기 보호로 보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말했어야만 했던 일들, 고백했어야만 했던 그리움, 목소리를 높이고 억울함을 호소해서야 했던 사건들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일 뿐일지도 몰라. 말로 달라질 수 있는 운명은 침묵으로도 달라질 수 있을 테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의 빛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등장인물 중 하나라면 어떤 빛을 가지게 될까? 과거의 누군가가 나와 함께 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써낸다면 그 사람은 나를 어떤 인물로 묘사할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의 눈에 보이는 '나'가 다르면 타인의 수가 늘어날수록 나란 존재도 다양해질 수 있다. 나의 실체와 타인의 시선 속에 존재하는 나는 과연 동일한 인물일까? 지나친 비약과 과장으로 묘사된 '나'의 모습에 발끈할 수도 있고, 오해를 풀기 위해 작가를 찾아가려 마음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그렇게 산다. 타인을 보는 마음의 눈은 언제나 내편이기에 그를 비약하고 과장하며 때때로 지나치게 사적인 결론을 내려버린다.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어째서 매번 쉽지 않을까? 규정짓고 패턴을 찾고 규칙을 발견해야 안심하는 인간의 본능만을 탓하기엔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 다짐하고 반성한 일이 많다. 인간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은희경 작가의 어떤 소설보다도 좋았다. 다른 책을 밀어낼 정도로 며칠간 이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1977년을 떠올려보기도 했는데, 시간의 바퀴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럼에도 1977년 여대 기숙사에서 일어났던 사랑이야기는 가난한 시골 동네에서도 흔하게 겪는 일화였다는 것. 남자친구가 셋이나 있던 양애란과 자기 취향이 확실하고 아는 것 많았던 오현수, 눈치 없는 순정파 이재숙과 게을렀던 목사의 딸 곽주아와 비슷한 인물들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그러니 1977년이라는 과거는 언제나 지금과 연결될 수 있고 여대 기숙사라는 물리적 공간 역시 가난한 시골 동네로 옮겨 놓을 수 있을 테다. 2026년도에 읽어도 어색함이 없는 소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그만 김유경과 김희진을 떠내 보낸다. 1977년과 2017년을 오가는 사이 어느새 2026년이다. 9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칠십을 코앞에 두고 있을 텐데. 여전히 자기 삶을 살고 있겠지. 은희경 소설 속 주인공으로 때때로 진짜 삶을 사는 현실 인물로. 말더듬증을 가진 유경이가 조금 더 행복해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