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도 자신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지 혹은 버려질지 알지 못한 채 첫 문장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썼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로 귀결된다. 쓰지 않고서는 삶의 의미가 없었다는 것. 인간의 쓰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유물에서 나온 기록의 흔적들 뿐이다. 갑자기 무엇인가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생겨난 건지 아니면 동시 다발적으로 기록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용은 별것 아니었을 거다. 기원전 3300년 전 것으로 판명된 쐐기문자의 내용도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기록한 것에 불과했다. 인류의 비밀이 거기에 숨겨져 있을 거라 여겼던 이들은 크게 낙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기록을 통해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시간으로 떠난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과거의 생활을 엿보며, 그들의 삶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쓸모없어서 잊혔던 기록들이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는 훌륭한 유물로 발견되고,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소소한 기록들이 훗날 가치 있는 기록들로 되살아 난 거다. 점토판에 재산 목록이나 신에게 바칠 제물의 수를 세겨나갔던 수천만 년 전의 그나 그녀의 기록들은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재발견되었다. 맨 처음 그들이 기록을 시작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겠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온라인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인류의 기록은 끝도 없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중이다. 기록의 양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할 수도 없지만, 수없이 쏟아지는 글의 홍수 시대에 나까지 동참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내적 고민이 있었다. 타고난 재능도 없으면서 기록의 쓰레기 더미 위에 내 기록까지 얹힐 필요가 있는지 자문해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 글의 쓸모를 모를 뿐이다. 일흔여섯 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모지스 할머니 역시 자신이 그린 그림의 쓸모를 알지 못했을 거다. 그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그리기를 다시 시작했던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자 재미 삼아 시작한 할머니의 그림은 엽서로 달력으로 책의 삽화로 그리고 장식품으로 팔려나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쓸모없던 그림의 쓸모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모지스 할머니를 만나고 나는 세상에 더 많은 모지스 할머니가 발견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증거가 많은수록 믿음이 강해지는 법이니깐. 우유를 팔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어느 중년의 쓸모없는 기록들이 빛을 발해 쓸모가 발견되는 순간을 만들어 내고 싶다. 단 한 명이라도 내 글과 삶을 통해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게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을 위해 부족하지만 기록을 멈추기 않기로 결심했다. 몇 번 쓰다가마는 기록이 아니라 10년간 매일 쓰는 일생일대의 대기록을 계획해 둔 것이다. 첫 번째 문장은 시작되었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문장은 몇천 번째 문장이거나 몇만 번째 문장일 수 있다. 이제 겨우 일 년 칠 개월인데 문장은 수북하게 쌓이는 중이다.
죽기 전에 내가 쓸 마지막 문장은 무엇일까? 탄생은 죽음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라고 했다. 내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을 쓰기 위해 시작되었다. 기나긴 쓰기의 시간들을 채우고 나면 마침내 내 삶의 마지막 문장을 만날 날도 오겠지. 어쩌면 그 문장이 마지막인지도 모른 체 적어 나가겠지. 이 모든 글들은 그 마지막 문장을 위한 여정이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쓸모없었던 기록들의 쓸모가 드러나길, 수만 년 전 잊혔다 발견된 쇄기문자처럼, 내 글의 쓸모가 발견되길, 그래서 가치 없는 기록이란 없다고, 쓸모없음이 실상 가장 쓸모 있는 일이었다는 증거가 되고 싶다. 해서,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매일 쓰는 이들에게,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림을 매일 그리는 이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멍 때리기를 매일 하는 이들에게, 매일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쓰는 이들에게 "괜찮아 계속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