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50대 후반의 아줌마다.
내 생의 첫 커피는 고등학교 때이다.
엄마가 드시던 알맹이 커피 : 설탕 : 프림을1:1:2 비율로 섞은 따뜻한 커피가 생각난다. 참으로 맛있었더랬다.
성인이 돼서도 그 비율을 유지하며 커피를 즐겼다. 그러다 한국인의 소울메이트, 믹스커피를 만났다. 이 또한 맛났다.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해서도 맛나게 마셨다.
결혼하고 한때 여러 가지 이유로 살림살이가 많이 기울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믹스커피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아이들 키울 때 동네 엄마들과의 수다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하루에 몇 잔씩 타 마셨다. 젊어서 그랬는지, 하루의 일과가 고돼서 그랬는지 몇 잔씩 마셔도 꿀잠을 잤다.
그 이후 소비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온갖 종류의 커피가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우리 집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 그 무렵 따기만 하면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동네 슈퍼에서 팔았다. 캔커피 중 하나를 좋아해서 그것만 계속 사 마셨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진주로 이사 왔다. 그 무렵 카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진주는 ‘할리스’라는 커피숍이 주름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셔본 바닐라라떼. 맛있는데 너무 달았다. 그래서 시럽을 반만 넣어 달라고 해서 마셨다. 한 10년은 그 커피만 마셨다. 내 입에 너무나 딱 맞았다. 시간이 흐르며 시럽을 뺐다. 시럽 없는 커피가 더 맛있어졌다. 이후 오로지 카페라떼만 마신다.
다른 사람들은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드립 커피도 마시고, 어쩌다 라떼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은 그냥 쓰다. 고로 나는 커피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라떼만 마신다.
어쩌다 내 입에 맞는 커피집을 만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같은 커피집이라도 커피를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다. 똑같은 순서로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만든다는데, 신기하다. 어느 커피집은 주인보다 아르바이트생이 만들어 주는 커피가 더 맛있는 경우도 있다. 그 알바생 오는 시간에 맞춰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갱년기에 이르니 조금씩 표나지 않게 아픈 곳이 생겼다. 다들 그런 것처럼.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한다. 끊어 보았다. 1차 실패. 처음 병원에서 이런저런 안 좋은수치를 볼 때는 정신이 바짝 들어 끊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슬~~~ 다시 마셨다. 이리 맛있는데 모르겠다. 그냥 마셨다. 다시 병원에 가서 더 안 좋은수치를 확인하면 다시 끊었다. 그러다 다시 마시고. 이런 것이 중독일까.
제일 오래 끊어본 것이 3개월이다. 그때 사람들이 피부가 참 좋다고 했다. 무슨 화장품 쓰냐며. 그 말 때문에 근근이 버티고 또 버텼다. 하지만 역시 다시 마셨다. 잠이 안 오고 피부도 그렇고 내가 가진 질병에 안 좋고…를 다 이기는 내 혓바닥. 한 모금 넘기는 그 맛을 어떤 것도 이기지 못한다. 의지박약이 아닐 수 없다. 이쯤이면 중독이 맞다. 카페인 중독.
중독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약물, 도박, 인터넷, 쇼핑, 휴대폰 등을 지나치게 많이 접함으로써 해로운 결과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사용하는 현상. 중단하고 싶고 해로운 것도 알지만 욕구가 너무 강해 통제와 중단이 불가능한 상황.’
나도 중단하고 싶고 해로운 것도 알지만 욕구가 너무 강해 통제와 중단이 불가능하다. 안 마시면 하루 온종일 마실까 말까를 고민한다. 커피를 마시고 몸이 괴로운 것과 커피를 안 마시고정신이 괴로운 것. 둘 중 어느 것이 나을까. 사실 몸이 괴로운 것을 내가 감각으로 느끼지는 못한다. 병원에서 숫자로 확인할 뿐이다. 그래서 몸에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마시게 된다. 직접적인 고통은 없으니까. 이렇게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 비슷한 것을 느꼈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냥 마시기로 결론 내렸다. 스트레스가 어느 쪽이 더한가를 생각해 보건대, 나는 안 마시는 쪽이 더하다. 그거 한 잔 마셔서 행복하고 기분 좋다면 마시는 것이 맞다. 말하고 보니 알코올 중독자들의 논리와 비슷하다. ‘얼마나 산다고 그 좋은 걸 안 마셔?’라고들 한다. 모든 중독자들의 변명은 다 같음을 느낀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기로 했다. 안 마실 수는 없다. 대신 규칙을 정하자. ‘오전에 하루 한 잔.’ 나는 주로 혼자 지내는 관계로 몇 년째 대체로 잘 지키고 있다. 물론 규칙을 조금 깰 때도 있다. 가끔 좋은 만남을 가질 때, 점심 식사 후 한 잔을 마신다. 오전을 넘기게 되지만 좋은 사람과의 커피 한 잔, 꿀맛 같은 라떼 한 잔이다.
이렇게 마시지 말라는 커피를 마시면 내 기대 수명의 몇 년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할 수 없다. 알 수 없는 미래보다 지금 오늘 하루 커피 한 잔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면 다른 선택은 없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그 기분 좋음이 수명을 늘려 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