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그리움은 일단 ‘어떤 이가 보고 싶다’이다.
또는 누군가의 뇌리에 그려지는 사람, 행복했던 상황, 아름다운 풍경이다.
사람, 상황, 풍경. 한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 한켠이 말랑해지는 느낌. 그런 것이 그리움 아닐까.
3가지가 따로따로 일수도, 3가지가 한 묶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움에는 볼 수 없음, 만날 수 없음이 들어있다.
마음에 그리기만 할 뿐 실제로 만나 온기를 나눌 수 없음에 그리움이 쌓인다. 하여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과는 그리움이 쌓일 턱이 없다.
힘이 남아돌던 젊은 날의 나는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는 내 쪽에서 꾸준히 연락했다. 어떤 인연이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6개월에 한 번씩 전화번호부를 펼쳐서 ㄱ부터 시작해 전화하거나 실제로 만났다. 초등학교서부터 중고등학교 선생님들도 찾아다녔고, 한 동네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과는 이사 가도 안부를 물었다.
소녀 시절 좋아하던 첫사랑도 어찌어찌 만났다.
첫사랑과는 만나지 않는 것이라 했던가.
중학교 이후로 처음 보았던 그 녀석은, 어쩜 그리도 키가 하나도 안 컸을까. 오랫동안 내 마음에 그리고 간직했던 무엇인가가 휘발되어 날아갔다.
그 아이도 그랬겠지. 피장파장 아니겠나.
어쨌든 오랜 그리움 하나가 사라졌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부지런 떨었던 나는, 의도치 않게 그런 식으로 그리움을 조금씩 삭제해 나갔다.
나는 왜 그리 사람들을 만나려 애를 썼을까.
그 사람들과 연락이 끊기고 싶지 않고, 떠올리면 행복한 그 상황을 계속 되뇌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상욱 작가의 <그, 그, 그>가 떠오른다.
‘그리운 것은 그인가, 그때인가.’
내가 열심히 만나고 다닌 이유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과 함께 한 즐거운 순간에 대한 그리움도 들어있다.
나를 좋아해 주던 그 사람들의 눈짓 몸짓 음성을 기억하고 싶은 나의 욕심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너무 열심히 그리움을 없앴나 보다.
그리 그리운 이가 없다.
정말 정말 그리운 이들은 이 세상에 없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리는 그런 사람. 살아 있을 때 그러지 말걸, 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 그리움은 내가 죽을 때까지 그려야 된다.
반대로 나를 그리는 이가 있을까.
있을 것이라고 정신 승리해 본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서글픈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