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와 만나는 친구들을 헤아려 보았다. 내 기억의 가장 처음부터 떠올려 보니 28명이다. 코흘리개 때부터 만나 온 동네 친구, 학교 다닐 때 친구, 결혼 이후 동네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 내 아이들 친구의 엄마들, 늦은 공부할 때 만난 친구. 다양한 경로로 알게 된 사람들이다. 더 많았었지만, 다들 그러하듯 이렇게 저렇게 걸러지고 남은 이들이다.
그중 2명이 요즘 친구에서 지인으로 강등 중이다. 그 이유가 내 잘못인지 그들의 잘못인지 모르겠다. 일단 내 마음이 그들 때문에 힘들다. 하여 지금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왜 노력해야 해?’ 이런 것이 아니라, 그럴 기운이 없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 만나기도 아까운 시간에 굳이 기분 나쁜 사람을 만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젊을 때는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어’라고 생각했다. 나는 뭐 완벽한가. 그 들 입장에서는 나 또한 그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분명히 있었을 터였다. 그러니 내가 먼저 손 내밀어 관계를 회복하려 했다. 화해하는 과정에서 오는 뿌듯함과 ‘내가 먼저 손 내밀었다’는 으쓱함을 즐기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힘을 쏟을 생각만 해도 기운이 빠진다.
누구나 자라오면서 친구에 관한 속담이나 글귀를 듣게 된다. 인터넷의 힘을 빌려 찾아보니 수많은 명언, 속담 등이 넘친다.
‘친구는 제2의 자신이다.’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뜻이다.’
‘성공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친구를 시험한다.’
‘우정은 두 사람이 영혼을 공유하는 것.’
‘진정한 친구는 어둠 속에서 함께 걸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글이 무척이나 마음에 와닿았고 ‘나도 그러해야지’라고 마음먹곤 했다. 그러나 위의 글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무겁다. 지금의 나는 어릴 때보다 친구에 대한 중요도가 많이 떨어졌다. 어릴 때는 친구라면 늘 함께해야 하고, 그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하며, 내가 필요하다고 할 때는 당장 달려가는 것이 마땅한 것이었다. 아마 나의 친구들도 그런 마음가짐이었다고 믿는다. 또한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의 속사정은 당연히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이었다. 누가 됐든 다른 한쪽이 그것을 모르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섭섭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게 뭐라고 따지기도 하고, 토라져서 혼자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어린 시절 친구는 중요한 존재였다.
시간은 흐르고, 중년의 여인이 되어버린 친구들. 서로 얘기하다가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다. 물론 어릴 때는 중요했다. 그 시절, 그 나이에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겪을 만큼 겪어서 뭔가 거슬리는 일이 생겨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다는 것을 안다.
중년의 내가 원하는 친구 관계는 무엇일까. 다시 한번 인터넷을 훑었다. 마음에 드는 세 가지를 골랐다.
- 모든 말과 행동을 칭찬하는 사람보다 친절하게 단점을 말하는 친구를 가까이 둬라.
- 진정한 우정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이 편안할 때 찾아온다.
- 친구란 서로의 마음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느끼는 사람이다.
첫 번째 글귀, 단점을 말해도 오해 없이 소화하는 친구, 나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경험상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친구 관계에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런 얘기를 듣게 되면 기분 상하기 쉽다. 이 세상의 모든 충고는 기분 좋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 글귀에서 중요한 것은 ‘친절하게’라고 생각한다. 듣는 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섬세해야 한다. 서로가 오랜 세월을 함께해 믿음이 쌓인 경우에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둘째, 서로 말을 하지 않는 순간이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거리가 떨어지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될 것 같은 사이는 불편하다.
셋째, 친구라고 마냥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좋은 관계가 아니다. 연락이 없다고 섭섭해하며, ‘언제 연락 오나 두고 보자’는 식의 기 싸움을 하는 이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서로가 ‘내 친구는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며, 보고 싶을 때는 주저 없이 연락하는 사이,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것을 응원해 주는 사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주절주절 글을 쓰다가 같이 사는 분한테 “친구가 뭐라고 생각해요?” 하고 툭 던졌다. “같이 노는 사람.” 참으로 단순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말이 마치 이 글 쓰느라 용쓰던 나에게 ‘뭐가 그리 복잡해’라고 충고해 주는 듯하다.
그래, 만나서 노는 사람이 친구지. 예전 한 방송국 로고송 가사가 생각난다. ‘만나면 좋은 친구~~~’였다. 만나면 반갑고 즐겁고, 헤어지면 다음이 기대되는 그런 사람이 친구다. 거기까지만 하자. 만나서 즐겁지 않으면 서서히 거리를 두면 그만이다. 거리를 둬서 생기는 외로움이 있다면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나 열심히 기르자.
나는 만나면 반갑고 즐거운 사람이 있는가? 그런 사람이 몇몇 있다. 참으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