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by 소피아미


글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고민한다. 나를 어디까지 내보여야 할까. 내용의 정도는 이 글을 읽는 이가 누군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농밀한 내 속을 100%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같이 사는 사람도 다는 모른다. 하긴 가끔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하여 지나온 기억을 더듬어 가볍게 써보려 한다.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나는, 네댓 살 때의 나다. 자그마한 가지 나무에서 가지를 맛있게 따먹던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냇물에서 놀다가 깊은 곳에 빠져 혼비백산했던 일, 추운 겨울에 추수하고 벼 밑둥만 남은 논을 얼굴이 빨갛게 얼거나 말거나 뛰어다닌 일 등이 떠오른다. 아, 할머니한테 맴매 맞을 뻔한 일도 기억난다. 맞은 기억은 없다. 할머니께서 회초리만 높이 드시던 모습만 기억한다. 섦음이 안 남은 것을 보니 아마 때리지는 않으셨나 보다. 엄마 말로는 내가 세 살 때 친할머니가 사시는 시골로 보냈다고 한다. 연년생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둘 다 돌보기가 힘들다는 이유였다. 이 대목에서 섭한 심정이 가득하지만 넘어가겠다.

나는 국민학교 갈 때가 되어 여섯 살에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너른 들판을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었음이 참으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다. 무척 낙천적인 나의 성격이 그때 만들어졌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마냥 즐겁게 뛰어놀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봤음은 다시 생각해 봐도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 이후의 삶은 도시를 떠나 본 적이 없다. 물론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절대 아니다. 시골은 게으른 내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새로 시작한 서울살이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살던 집이 남대문 근처 좀 더 가면 서울역이 코앞이었다. 엄마는 나가 놀지 못하게 하셨다. 어린 여자아이가 나가 놀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늘 집에 있어야 했다. 다행히 집안 형편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엄마는 울 남매가 글을 배우고 나서는, 재밌게 읽을만한 책을 많이 사놓으셨다. 하루 왼종일 정말 할 것이 없던 나는 할 수 없이 그 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이고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 집은 그 시절 많이들 그랬던 것처럼 아들과 딸의 차별이 굉장히 심한 편이었다. 딸보다는 아들이 잘 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한국형 집이었다. 딸인 나보다는 아들이 공부 잘하길 바라셨고 책도 동생이 많이 읽기를 바라셨는데, 내 기억에 동생이 책을 보고 있던 기억은 없다. 동생은 남자라고 밖에 나가 놀 수 있었기에 늘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곤 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 시대는 여자는 곱게 집에 있다 시집가는 것이 최고였다. 그 시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집은 그랬다. 여자는 공부도 많이 할 필요 없다는 것이 울 아부지 생각이었다. 아들인 동생은 늦은 나이까지 외국 유학을 보내시고, 그런대로 공부 잘하던 딸인 나는 상고를 보내셨다. 드라마 ‘아들과 딸’이 딱 내 얘기였다. 그래도 별 불만은 없었다. 그 당시 공부하기 싫었던 나는 옳다구나, 하며 어린 나이에 8남매 막둥이에게 시집을 갔다.


당연히 연애 결혼이었다. 어릴 때부터 조숙했던 나는 그 방면으로도 조숙했던 것 같다. 뭘 안다고 시집을 가겠다고 나섰었는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렇게 울 신랑이 좋았던 것인지, 암튼 22살에 29살 남자와 결혼했다.

지독히도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형이 셋에 누나가 넷 있는 남자였다. 형 세 분을 합쳐도 우리 신랑 하나를 못 이길 정도로 가부장적이었다. 명절에 시댁엘 가면 모든 어른이 나보고 고생한다고 안쓰러워했다. 울 신랑은 결혼 전에도 집에서 내놓은 말썽장이였다나 뭐라나.

그랬던 그가 지금은 순한 양이 되어 나만 바라보는 귀요미가 되었다. 그에게 고마운 점이 참 많다. 공부 짧은 나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라 다독여 주고 대학도 가라고 등 떠밀어 주었다.

덕분에 아들 셋 다 키워놓고 아들, 딸 뻘 친구들과 동기가 되어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도 다녔다. 외조의 대왕이다. 다 잘라먹고 좋은 얘기만 해서 그렇지 찌그럭 빠그럭 힘들었던 시절이 많았다. 둘이 그 모든 시간 다 버텨내고 각자 상대에게 측은지심이 생겨버린 지금이 참으로 좋다. 더 바랄 것 없이 편안하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글만 잘 쓰면 된다. 앞으로 남은 생은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허세인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는 세월이 말해 줄 것이다. 제발 허세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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