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과 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였다. 내가 심각하게 아프고 난 뒤부터는 남편과 나는 각자 식사를 준비한다. 둘이 먹는 음식이 조금 종류가 다르다. 아프기 전에는 같은 종류를 먹고 나 혼자 식사 준비를 했다. 아플 때 내가 대중 없이 일어나게 되면서 남편이 혼자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했던 것이 그대로 굳어졌다. 어쨌든 나는 편하고 좋다.
그날도 각자 식사 준비 중이었는데 남편이 뭔가 나를 챙겨주었다. 며칠 지났다고 세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살짝 감동한 나는 한껏 콧소리를 내며 장난스런 멘트를 날렸다
“오뽜, 나 챙겨주는 거야?”
비슷한 리액션을 예상하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한숨인 듯 아닌 듯한 숨소리와 함께 담담하게 한마디 한다.
“내가 사는 마지막 이유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뜬끔없는 눈물을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입술을 깨물며 참았지만 실패. 줄줄 눈물이 흘렀다. 든든하다. 고맙다. 나도 잘하자. 여러 생각이 순간 지나갔다. 36년간 남편한테 쌓인 거 많은데 그 한마디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다시 쌓일 것을 알지만).
어느 대학교수의 말이 부부의 생활에서 60%가 ‘연기’라고 한다. 나쁜 의미의 연기가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연기라는 것.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들었다. 믿음직한 남편이지만 사는 동안 아무 논리도 없이 가부장적 권위로 나를 누를 때가 많았다. 속은 부글부글이지만 더 나쁜 상황으로 가는 것이 싫어서 애써 웃으며 넘어간 세월이 한가득하다. 그러다 결혼 생활 30년 쯤 되던 해에 같은 패턴으로 나를 몰아붙이면서 헤어짐을 이야기했다. 나는 차분히 말했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이제 나도 내려놓고 싶었다. 내말에 남편은 내일 다시 얘기하자며 안방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내가 미쳤어? 이혼하게. 젖은 낙엽으로 니옆에 딱 붙어살거다". 남편 없는 삶에 대해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등과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남편은 늘 하던 방식을 좀더 세게 지른 것 뿐이었다. 다만 이제는 내가 연기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허탈한 웃음이 터짐과 동시에 저 사람도 밤새 고민했겠구나 싶어 안된 마음이 들었다. 센척하지만 누구보다 속이 여린 사람임을 알기에. 이런 것이 측은지심이지 싶다. 남편은 아마 다시는 마지막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나보다 남편이 더 많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전세 역전이라고나 할까. 이런 경험들로 아닌 척하는 연기도 상대방을 좋아하고 나에게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남편의 ‘내가 사는 마지막 이유’라는 말은 연기가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아마 아닐 것이다. 내가 아는 남편은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연기라도 상관없다. 긴 세월 함께하고 힘든 시간 헤쳐온 누군가가 지금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많은 나날 내 삶의 무대에서 신들린 연기를 펼치며 살고 싶다. 이제는 돌아와 내편이 된 남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