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테고리를 창조하다
우리는 취업, 시험 응시, 이직 등의 사유로 주기적으로 증명사진을 찍는다. 우리가 찍는 증명사진은 예전까지만 해도 획일화된 양식이 있었다. 정면을 응시하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표정과 흰색 혹은 파란색의 배경이 그것이다. 난립하는 영세 사진관들 사이에서 특유의 파스텔 색감과 사선 각도의 포즈를 시그니처 삼아 자신만의 장르를 만든 사진관 브랜드가 있다. 바로 ‘시현하다’이다. 시현하다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진관 산업은 영세 사업자들이 주축을 이루었으며 브랜딩이 도입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존의 양식이 있었기에 특이성을 강조하기가 어려웠고 아무도 과감하게 이를 시도하지 못했다. 반대로 해석하면 브랜딩의 관점에서 미개척지에 가까웠던 것이다. ‘시현하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었다.
(출처 : '시현하다' 홈페이지)
이후에 또 다른 브랜드가 탄생했다. 그것은 ‘밸런스 버튼’이라는 바디 프로필 전문 업체로 바디 프로필이라는 특정 영역에 집중해서 촬영을 이어갔고 특유에 채도가 진한 배경을 사용함으로써 시그니처를 더했다. 그들은 여러 사진의 영역 중 바디 프로필에만 집중하여 규격화된 설루션을 제공하였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문성이 있다고 여겨져 피트니스 붐을 타고 급속 성장했다. 현대 경영학의 관점에서 기업이 추구해야 할 이상은 ‘독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업체가 난립하는 사회에 어딜 둘러봐도 경쟁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사업이 본궤도에 접어들면 너 나할 것 없이 그것을 카피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자신이 하나의 특정 카테고리를 창조하여 선도자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은 그나마 독점에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100명이서 경쟁하여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배틀 로열 장르의 게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수십 명이 모여야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단점 때문에 각 개발사들은 이를 과감히 시도하지 못했다. 그렇게 배틀그라운드는 거의 경쟁자가 없는 상태에서 게임을 출시할 수 있었고 그 장르적 특성만으로 많은 유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수많은 카피 게임이 탄생했지만 이미 배틀그라운드가 그 브랜드를 전 세계에 또렷이 인식시켜놓았기에 그들이 만든 성은 현재까지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샴푸는 LG생활건강과 같은 대기업이 과점하고 있었기에 신생 브랜드가 이들 시장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TS샴푸’는 탈모방지 샴푸라는 일관되게 강조하여 브랜드 콘셉트를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탈모 인구 천만 시대라 말하지만 정작 탈모 샴푸에 타깃을 둔 전문성을 갖춘 브랜드는 없다시피 했고, TS샴푸는 이 영역에만 오래간 집중함으로써 마침내 해당 시장의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쿤달 샴푸’는 유해 성분을 배제하여 엄선된 자연 원료만을 사용한다며 소재의 안전성을 강조하여 한 때 대기업을 제치고 샴푸 브랜드 평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1976년 아니타 로딕이 설립한 영국 브랜드 ‘더 바디샵’은 그 이름처럼 바디케어 제품에 집중함으로써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동물 실험 반대, 인권 보호 등의 가치를 내걸며 이를 유지함으로써 선한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인상 깊게 기억될 수 있었다. 아나타 로딕은 초기 매장 설립 당시 벽의 곰팡이 자국을 지우기 위해 진한 녹색 페인트를 칠했는데 그때부터 현재까지 한결같이 초록색의 시그니처 컬러를 유지함으로써 그들만의 특별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UNTREND IS TREND.’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내가 책을 쓸 때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존에 없는 키워드를 주입시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줄기차게 ‘언더독’이란 단어를 등장시키는 것 또한 경영 서적 중 ‘언더독’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도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포화시장인 출판산업에서 나만의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TS는 앨범을 낼 때 항상 세계관을 주입시켰고 이는 그들만의 장르로 작용하여 수많은 팬덤을 거느릴 수 있었다. 영화 ‘기생충’에는 강자와 약자의 대결 구도가 아닌 약자와 약자 간의 대결에 초점을 둔다, 이렇듯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평론가들이 말하는 ‘삑사리의 미학’인데 그는 이러한 촬영기법을 통해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영화 ‘마더’를 보면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지에 도착한 아주머니들이 절경을 눈앞에 두고 음악에 취해 계속해서 춤을 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눈앞의 절경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즐겁다는 의미의 역설적 장면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역설을 통해 그만의 컬러를 완성시켰다. 기존의 장르를 따라 하는 데 성공한다면 기껏해야 선두주자의 과실을 빼앗아먹는 것에 그치지만 자신이 직접 사과나무를 키워낸다면 그 과실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며 오래도록 이를 소유할 수 있다. 세상은 본디 트렌드세터보다 트렌트 크리에이터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