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 사회를 '액체 사회(Liquid Modernity)'로 정의했다. 그가 바라본 근대는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화하여 견고한 강체가 없는 유동적인 사회였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와 앞으로의 세상을 '중독 사회'라 명명하고 싶다. 지금 현재의 세상을 디자인하는 주체는 정치가 아닌 산업이고 산업은 개인의 욕망을 엔진으로 작동한다. 산업은 항상 정체하지 않고 더 커지는 것을 지향한다.
증기 기관이 근대의 모습을 바꾼 것처럼 앞으로의 미래를 바꿀 기술은 인공 지능, 빅데이터, 메타버스 이 세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 기술을 발전시키고 상용화시키는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은 장기적으로 커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세 가지 기술 중에 인공지능에 대해 얘기해보자. 인공지능은 다양한 양태로 쓰이지만 그 궤도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여 의사 판단의 효율을 높이는 것. 두 번째는 개인의 기호를 정확히 파악하여 초개인화된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다.
후자의 경우 현재 그 기술의 완성도는 매우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커머스 산업은 우리가 가장 살 확률이 높은 상품들을 보여주고, 넷플릭스 등의 콘텐츠 산업은 우리가 가장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보여준다. SNS 서비스 또한 각종 정교한 알고리듬 설계로 개인이 최대한 그 공간에 오래 머물게 유도한다. 우리가 하루 동안 흩뿌리는 데이터로 말미암아 플랫폼은 우리의 기호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플랫폼의 목적은 우리를 1분이라도 그곳에 더 머물게 하는 것.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플랫폼들은 초개인화된 서비스로 말미암아 우리를 더더욱 그 공간에서 오래 머물게 유도할 것이다. 즉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이다. 이 중독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사고력과 이성적 성찰 능력은 퇴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 감성에 역행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얼마나 다른 것에 중독되어 있는가를 살피고 그 중독에 벗어날 단단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번 새로운 것을 욕망하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에 의해 많은 것들에 중독된다. 각 기업은 이러한 도파민을 저격수처럼 정확하게 정조준하고 있다. 세상이 내놓은 다양한 콘텐츠와 자극적인 오락거리에 중독된 뇌는 루틴의 실행 후 이어지는 개인의 성장이 제공하는 미미한 도파민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이 선사해주는 보상의 경험은 너무도 늦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중독 사회가 심화되면서 개인들의 지적 레벨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일부의 선각자들이 거둘 과실은 이에 비례해 증가하게 된다. 중독시킬 것인가? 중독될 것인가? 중독에 반응하지 않고 온전함을 지킬 것인가? 우리에게는 이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우리는 두 번째 선택지를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인터넷 경제가 처음으로 발현될 때 결국 세상을 디자인한 이들은 인터넷 속 방대한 정보들 사이에 허우적대던 중독자가 아니라 인터넷 경제를 지렛대 삼아 자신의 생각을 펼친 선각자였음을 기억하자. 이용당하는 쪽보다 이용하는 쪽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