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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엄마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 마음의 병을 이해할 시늉도 않았다.
그때만 해도 그런 시절이었다. 몇 년 사이 마음의 병, 우울증을 다루는 콘텐츠가 많아졌다. 대중의 리터러시가 높아졌다.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지만 더 높아지길 바란다.
내가 한창 아플 때는 그런 콘텐츠들이 우리 시대의 언어로 나오기 전이었다. 책을 찾아봐도 외국인 저자의 번역서가 주류였다. 부모님 세대에게 우울증은 한마디로 정신병, 또는 나약함이다.
"젋은 놈이 쯧쯧쯧. 배가 불러서 그래."
비슷한 류로 치매에 대한 인식이 있다. 지금은 치매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져서, "늙으려면 곱게 늙어야지 미친 노인네." 같은 말 잘 안 들리는 같다.
중년을 지나 배우자나 자녀를 먼저 잃는 아픔, 평생 일한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하고 겪는 우울에는 동정과 연민의 시선이 담긴다. 하지만 젊었을 때, 소위 말하는 청년기에 정신이 꺾이고 좌절에 빠져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박한 평가를 받는다.
이해받기 어렵다고 느꼈다. 이해받지 못하는 경험이 늘어갈까 두려웠다.
친척들에게 말하는 것? 무서웠다. 결국 완전히 회복하고 몇 년이 지나기까지 친척과의 교류는 끊었다. 나는 심각한데 대수롭지 않은 게 되고, 금방 일어설 수 있는 것으로 쉽게 다뤄지고 넘어가는 분위기. 평소 교류는 없지만 가끔 보는 사이인 친척 간의 관계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태도일 것이다.
친척까지 갈 것도 없이, 엄마도 처음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다가, 다시 뭐든 시작하겠거니 정도로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폐인처럼 집에 틀어박혀 3개월쯤 지나 하는 말이 "엄마, 나 우울증인 것 같아" 였으니·······.
한편으로는 억장이 무너지고, 한편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드셨으리라. 그래서 엄마의 첫 반응은 이런 내용이었다.
"무슨 우울증이야, 그까짓거 정신력으로 다 이겨내면 돼.”
듣는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말을 꺼내는 것만 해도 엄청난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했는데 결과가 ‘역시나’여서 괴로웠다. 이해받지 못했다는 무거움만 남았다.
운이 좋았다고 느끼는 지점. 동생이 사회복지와 심리를 공부한 사람이었다. 내 상태에 대해, 엄마와 같이 있을 때 설명해준듯 하다. 내 상태를 놓고 엄마와 다시 대화하지 않았는데, 엄마의 태도는 달라졌다.
푸시하지 않고, 이해한는 '척'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마음의 싹을 다시 틔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줬다.
아직도 기억나는, 아마도 내가 죽기 전까지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시간대도, 상황도, 맥락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씬(SCENE)만 기억난다. 몇 날 동안 가족과 겹치는 시간대를 피했기에 교류가 없는 상태였다. 방에 틀어박혀 있는 나를 엄마가 심히 조심스럽게 불렀다.
"HG야."
사람의 목소리엔, 텍스트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무엇이 더 들어있다. 이때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마치 '아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기가 상징하는 것은 연약함이다.
깨지기 쉬운 존재. 보호가 필요한 존재. 잘못 다루면 부숴질 수 있는 존재. 마음이 망가진 사람을 설명하는 말에 딱 맞다.
밥 차려놨으니 먹으라는 내용이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느낀 엄마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고마운 마음이 일어났던 것만 기억난다.
마음이, 일어났다.
다음으로 미안했고, 아팠다. 죽어있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다 큰 아들이 이런 상태에 빠졌을 때, 저렇게 대해야 했던 부모 마음은 어떤 걸까? 나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다.
내가 부모를 골라 태어나지 않았듯, 부모도 나를 골라 낳지 않았다. 저 사람은 내 부모로 태어났을 뿐인데 왜 내 밥을 차려주고, 방을 내어주며 돌봐줄까? 그것도 기꺼이. 나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레 부른 세 음절 속에 치유의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두운 방 안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리고 그 의미가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멍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던 마음의 어떤 부분이 회복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