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 7/8
이제 동생을 기억한다.
부모와 마찬가지다. 형제, 자매, 남매는 서로를 골라 태어나지 않는다. 나도 동생을 고르지 않았고 동생도 나를 고르지 않았다. 그저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났을 뿐이다.
먼저 태어나 저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게 생각해 인간 취급 안 할 수도 있었다. 실제 그런 집도 많은 것 같고.
그때 돈이 없었다. 내가 한동안 일을 못할 상태인 걸 알면서도 2개월을 버틴 이유이기도 하다. 갚아야 할 학자금도 아직 많은데, 생활비 조금이라도 모아둬야 가족에게 손 벌리지 않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휴대폰비는 내가 내야 할 것 아닌가. 외출할때 교통비는 내가 내야 할 것 아닌가.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수중에 360만원 정도 있었다. 한 달에 30만원씩 쓰면 1년을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되겠지. 3개월쯤 됐을 때 이가 아팠다.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100만원 생겼고, 제대로 망했구나 싶었다.
집 인터넷비, 휴대폰 월정액, 학자금대출 이자 등을 합치면 고정비는 10만원 남짓. 치과 치료후 실질 예산은 10만원 조금 넘는 상황이 되었다. 내 생애 가장 쪼들렸던 시절이다. 대학때보다 더 힘들었다.
그와중에 매일 술을 먹었다. 편의점에서 4캔 맥주를 사면 만원이 나간다. 사치재였다. 돈이 아까워 맥주 피처 큰 것을 사놓고 먹었다. 그것도 월 예산이 10만원으로 줄어들자 집기 어려웠다.
가난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주 1회 정도 고정 지출이 있었다. 월요일이 되면 집 앞 마트에 가서 초코파이와 코카콜라를 샀다. 카스타드는 감히 집지도 못했다. 이미 가족에게 신세지고 있는 것이 많았기에 손은 벌리기 싫었다.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고 살고 싶었다.
그때 동생은 뭐가 먹고 싶냐며 계속 물어보고, 사다주었다. 동생이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님을 잘 안다. 그저 대가없이 돌봐준 것이다.
동생은 왜 그랬을까? 나는 동생에게 잘해준 게 없는 사람이다. 불쌍해서 그랬더라도 감사한 일인데, 불쌍해서 잘해준다는 기색을 느낀 적도 없다. 고마운 일이다.
가족이라는 끈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가족에게 미안했다. 고맙기보다 미안했다.
자살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자살한 사람 주변인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과 자살할 확률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죽고 싶을 때마다 가족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호강은 못 시켜줘도, 이런 최악의 것을 이 사람들에게 주면 안 된다. 좋은 것은 못 줄망정 나쁜 것을 줄 수는 없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겠다.’
가족이 나를 보호해줬다. 그래서 회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살아있습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