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혼돈: 쓰레기 산을 만들다

추락: 4/8

by Homo Growthcus


인수인계 기간 2개월은 내게 독이었다. 몸이 완전히 넝마가 되었다. 마지막 퇴근을 하며 편의점에서 잔뜩 먹거리를 사서, 방문을 걸어 잠구며 들어갔다.


정상인들이 사는 세계를 해변이라고 하자. 해변에 사는 사람은 힘든 일도 겪지만 곧 회복한다. 회복탄력성이 있기에 가능하다.


나는 해변에서 멀어져 길을 잃고 표류했고, 더 이상 수면에 떠있을 힘을 잃은 사람이었다. 바다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오기 어렵다. 수면은 점점 멀어지는데 수압은 오히려 높아진다. 헤엄은커녕 숨도 쉴 수 없다. '아, 죽나보다.' 체념하고 발버둥을 멈춘다.


4212B373-370D-4649-A8AC-9DA8260C909C.png 2016년, 겨울 어느 날 그린 그림.



같은 종류의 고통을 겪고야 이해할 수 있는 아픔과 어려움이 있다.


그동안 살며 우울증 상태였을 사람들, 당연히 만났다. 그들이 자주 하는 말은 '못하겠어'와 '힘들어'였다. 그들을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내 에너지 레벨이 그만큼 떨어지자 나도 다를 바 없었다.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왜 뛰지 못하니?' 말하는 사람의 다리를 잘라보라. 그도 뛰지 못할 것이다.


못하겠고 힘들었다. 신경이 다 타버린 것 같았다. 무슨 행동을 해도 신경계가 움직여야 하는데 마모되어 있으니 모든 일상이 고통이었다. '신경증'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그들이 살던 세계는 심해의 세계였다. '그때 그 사람들이 이런 상태였나 보다…' 깨닫게 되었다.


아무것도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에도 자극받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를 내팽개치고 싶을 뿐이었다. 바닥에 눌러붙어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었다.


3일? 일주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한동안 방 안에서 썩어 있었다. 방에 틀어박혀 음식을 먹고 자고 깨기 반복했다.


삼각김밥의 비닐, 라면 용기, 과자 봉지, 음료수 페트병 등이 방에 나뒹굴었다.


사람이 지내는 공간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 방이 쓰레기로 덮이다못해 쌓이기 시작했다. 김완 작가님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보면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집 에피소드가 나온다. 대충 풍경이 그려진다. 나도 작은 동산이나마 만들어봤기에.


그때의 내 상태로 미루어보아 본인이 인정하건 안하건 그런 사람의 내면은 정상이 아니다. 쓰레기가 있어야 할 곳은 쓰레기통이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활동은 일상이다.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런 행동을 못하는 것이다. 쓰레기를 옆에 두고 먹고 자고 깬다. 태초를 묘사하는 말, 질서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 있어야 할 것이 없어야 할 곳에 있는 상태를 우리는 ‘혼돈’이라 말한다. 나는 카오스에 이르렀다.


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정신과,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인간의 위장은 합의할 수 없다. 위장이 이기게 마련이다. 살아야 하니 먹었을 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힘들었다.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고 대화하는 게 힘들었다.


자세하게 쓰진 않았지만 그동안 살며 일하며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인간 혐오 상태에 이르렀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인간은 나 자신이기에, 스스로를 혐오했다.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접촉점은 끊었다. 방구석 폐인,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이 시기의 기억은 대체로 깜깜해서 적기 어렵다. 영화 보는데 화면이 갑자기 까맣게 되는 것처럼, 드문드문 기억날 뿐이다.


쓰레기가 쌓여가는걸 그냥 내버려두고 싶을 정도로 망가진 내 모습과, 내면이 반영된 어둡고 더러운 방이 기억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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