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파멸: 앉아만 있는것도 못할 지경

추락: 3/8

by Homo Growthcus


<한낮의 우울>이란 책이 있다. 저자는 '중증'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중증은 말 그대로 '산 송장' 상태에 이르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먹을 의지가 없어 밥을 먹여줘야 하고, 대소변 보러 화장실 갈 의지가 없어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할 수 있는건 침대에 누워 고통스러운 자기세계에 갇혀있는 것 뿐. 아무도 없으면? 가만히 냅두면? 죽는 것이다. (오늘날 일어나는 수많은 고독사에 이런 죽음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원초적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중증이라면, 나는 '경증' 우울증을 앓았다고 할 수 있겠다. 먹고 싸는 생명유지 행위에마저 의지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다. 사람을 대하는데 너무 큰 에너지가 들었다.


사실 들어가는 에너지는 같았을 거다. 내 용량이 작아졌기에 그렇게 느낀 것이다. 수중에 100만원 있을땐 치킨 한마리 시키는게 아무 부담이 없다. 2만원 있을 땐 주문도 못 넣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인간은 경계선이 필요하다. 나와 타인의 경계, 나와 세계의 경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경계선이 전부 흐물흐물해져 존재가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풍선을 불고 불면 점점 표면이 얇아져 곧 터질 것처럼,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짬이 날때마다 최대한 누워지냈다. 인수인계 기간까지 2개월을 더 버텼는데, 잠깐이라도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면 정말 쓰러졌을 것 같다. 허리를 세우고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다.


뇌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미친듯한 두통이 수시로 찾아왔다. 편두통을 묘사하는 말로 '머리가 쪼개지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뜨거울 때 머리를 만져보면 마치 펄떡펄떡 뛰는 심장처럼 그 부분이 욱신거렸다. 뇌가 그렇게 '박동'할 수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으니, 머리를 이루는 근육이 아팠던 것이라 생각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풀어줘야 하는데, 그래서 압력이 분출되도록 해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사람들은 압력이 분출될 수 있도록 노래방도 가고, 산도 오르고, 뛰고, 소리지르고, 별 짓을 다한다. 그래야만 내면에 쌓인 스팀이 분출되며 압력솥이 폭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망가진 것은 수면생활이었다. 보통의 사람은 7~8시간 정도 자고나면 눈이 떠지고 좀이 쑤시고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게 된다. 이때의 나는 방어기제가 잠으로 굳혀져서 자도 자도 계속 자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면 고통스러운 하루가 시작되니까.


긴 추석 연휴가 있었고, 2년만에 연속으로 쉴 수 있는 기간을 맞이했다. 연휴 내내 잤다. 10시간을 자도 더 자고 싶었고, 14시간을 자도 더 자고 싶었다. 그러다 더이상 누워있기 힘들어서 몸을 일으키곤 했다.


'아무것도 안 할거야.'

머리속엔 이 생각만 맴돌았다.




10시간을 자도 피곤했고, 14시간을 자도 피곤했다. 당연하다. 수면효율은 8시간을 정점으로 한다. 9시간 넘게 자면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다.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의 저자는 '중증'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다. 책을 통해 중증은 ‘산 송장' 상태에 이르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먹을 의지가 없어 밥을 먹여줘야 하고, 대소변 보러 화장실 갈 의지가 없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침대에 누워 고통스러운 자기 세계에 갇혀 고문받는 것 뿐이었다. 돌봐주는 사람 없이 가만히 냅두면? 죽는 것이다. (오늘날 일어나는 수많은 고독사에 이런 죽음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원초적 활동마저 불가능해지는 것이 중증이라면, 나는 '경증' 우울증을 앓았다고 할 수 있겠다. 먹고 싸는 생명유지 행위를 할 의지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일상적인 사회생활은 불가능했다. 사람을 대하는데 드는 에너지가 너무 크게 느껴진 게 문제였다. 수중에 100만원 있을 때는 치킨 한 마리 시키는 거 아무 부담 없다. 2만원밖에 없다면? 주문하며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사람 대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는 같았을 것이다. 내 배출용량이 작아져 그렇게 느꼈을 뿐.


인간은 경계선이 필요하다. 나와/타인의 경계, 나와/세계의 경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경계선이 모두 흐물흐물해져 내 존재가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풍선을 불고 불면 점점 표면이 얇아져 터지는 것처럼, 불안한 상태가 되었다.


짬 날 때마다 최대한 누워지냈다. 인수인계 기간까지 2개월을 더 버텼는데, 잠깐이라도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면 쓰러졌을 것이다. 허리를 세우고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다. 뇌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두통이 수시로 찾아왔다.


뜨거울 때 머리를 만져보면 마치 펄떡펄떡 뛰는 심장처럼, 그 부분이 욱신거렸다. 뇌가 그렇게 '박동'할 수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으니, 머리를 이루는 근육이 아팠던 것이라 생각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풀어줘야 한다. 사람들은 발산을 위해 노래방도 가고, 산도 오르고, 뛰고, 소리지르고, 별 짓을 다한다. 그래야 내면에 쌓인 스팀이 분출되며 압력솥이 폭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압력이 분출되도록 해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특히 망가진 것은 수면 생활이었다. 보통 사람은 7~8시간 정도 자고 나면 눈이 떠지고 좀이 쑤시며 허리가 아파 일어나게 된다.


당시 나는 방어기제가 잠이었다. 계속 자고 싶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면 고통스러운 하루가 시작되니까.


2년만에 추석 연휴를 맞아 쉬는 기간이 주어졌다. 연휴 내내 잤다. 10시간을 자도 더 자고 싶었고, 14시간을 자도 더 자고 싶었다. 허리가 아파 누워있기 힘들어도 깨기를 거부하다 몸을 일으키곤 했다.


'아무것도 안 할거야.'


이 생각만 맴돌았다. 10시간을 자도 피곤했고, 14시간을 자도 피곤했다. 그땐 몰랐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수면 효율은 보통 8시간을 정점으로 한다. 9시간 넘게 자면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 그나마 연휴를 보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심리적 압박감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연휴 마치고 다시 첫 출근. 딱 반나절 동안 괜찮았다.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되자 다시 죽을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위협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근데 죽을 것 같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일까? 예전에 유명 연예인이 이동중에 ‘차 안에서 죽을 것 같다고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갔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살맛나는 일이 하나도 없다 > 우울하다 > 우울감이 계속된다 > 죽을 것 같다 > 공황상태


나를 잘 살피고 돌봤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이미 내 인생은 ‘파멸’ 역에 도착했다.


내 세계는 빛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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