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붕괴: 배가 언제 이렇게 나온거지?

추락: 2/8

by Homo Growthcus



전형적인 마른 체형이다. 물만 마셔도 살찌는 체질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반대였다.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나?" 라는 말이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불뚝 나온 배를 봤을 때 형용할 수 없게 이상했다.


내 몸도 이렇게 될 수 있구나.


몸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무지했는데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신경 쓰지 않아도 큰 문제 없었기에 그랬다. 대가가 복리로 돌아온 셈이다. 돌아보면 몸이 그 지경이 된 것은 당연했다. 물을 끓이면 증기가 되듯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이 아니었다. 20대라 신진대사가 활발했고, 섭취한 열량을 전부 태우며 살았기에 말랐던 것이다.


대학 수업 짤 때 보면, 이동하기 싫어 최대한 같은 건물에서 수업을 듣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일부러 동선을 만들었다. 한 두시간 걷는 것은 일상이었고, 에너지가 넘치는 만큼 많은 활동을 하며 살았다.


그런 생활습관을 몸이 망가진 2년동안 하나씩 잃었다. 출근길에 10분 정도 걷고, 퇴근길에 10분 정도 걷는다. 그 외 유산소 활동? 없다. 일하는 시간 대부분 앉아 지냈다.


녹차 라떼, 바닐라 라떼, 카페 모카 등 우유와 시럽이 듬뿍 들어간 음료를 매일 한두 잔씩 마셨다. 콜라를 몸에 퍼부었고 대부분 식사는 편의점 도시락과 라면을 때웠다. 저녁에는 치킨과 맥주, 떡볶이를 즐겨먹었다.


식단에 식이섬유는 없고 단백질은 소량 있으며 탄수화물은 넘쳐흘렀다.


평일의 스트레스는 보상 심리로 발동했다. 집에 들어오면 최대한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었다. 주말에도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활동량은 줄었는데 음식은 더 먹었다.


나이 한 살 먹을 때마다 신진대사는 감소한다. 태우지 못한 칼로리가 몸에 쌓였다. 운동을 안하니 근육이 제로에 수렴했다. 몸이 갈수록 약해지는 완벽한 악순환 고리가 완성됐다.


몸 상태를 인지했을땐, 이미 의지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모멘텀을 만들 수 없었다. 정신세계가 끝모를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대체 하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건지,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있는건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 견뎌내는 시절이 왔다.


이때 내 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곧바로'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책임감 없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나몰라라 하고 최대한 빨리 '정지' 버튼을 눌렀어야 했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끝낼 수 없는 지켜내고 싶은 관계가 있었고, 착한사람 콤플렉스가 심했다.


나만큼 한 사람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작 내가 받는 메시지는 부족하다는 것 일색이었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지식을 가지고 그때로 돌아가면 같은 선택을 할까? 모르겠다. 다만, 지금 아무리 다시 생각해봤자 그때의 선택과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미 지난 시간이고 대가는 오롯이 내 몫이다.


하루가 지날수록 몸이 쇠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만큼 정신도 무너지고 있었다. 인간의 의지력은 아주 한정된 자원이다.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스테미너가 넘친다는 표현이 있다. 게임 언어로 하면 HP(체력), 정신력은 MP(마나)라고 할 수 있겠다.


게임에서는 체력이 2여도 마나는 98일 수 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체력이 2면 마나도 2다. 끽해봐야 4~8정도 될까? 정신력만으로 버티기엔 인간은 철저히 물질적 존재다. 천재 중에 비리비리한 몸으로도 엄청난 수학적 연산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피지컬을 가꿨다면? 더 대단한 수학적 발견을 했을 것이다.


몸이 붕괴되면 정신도 붕괴된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수행하는 것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려웠다. 급기야는 말을 더듬고 있었다.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 이렇게 되니 무서웠다.


앉아만 있어도 힘들어졌다. 일상이 붕괴했다. 완전히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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